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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예명이 시인 / 오늘의 만두 외 5편

by 파스칼바이런 2021. 8. 16.

예명이 시인 / 오늘의 만두

 

 

만두에 관해 말하고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만두의 속에 관해. 삶아도 쪄도 구워도 속은 그대로인 소스를 첨가하거나 첨가하지 않거나 하지만 이것은 무국적 반달,

움직여요, 사연이 움직여요.

분석하고 눈감고 이유를 버무려요. 사건이 빚어져요. 누르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오는 사연들. 구름 속에서 달이 빠져나오듯 흐르는 구름과 구름, 습기를 빨아들이는 하얀 만두피(皮) 피를 흘려요. 사건이 종료되지 않아요.

 

한입 크기의 어둠, 알맞은 크기와 온도로 제도화되는 것들.

 

오늘 만두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더러운 만두,

감춰지고 부풀려지는 진실과 거짓,

터질 듯 터지지 않는.

 

『서정의 내부』 ,예명이 , 시인동네, 2014년, 13쪽

 

 


 

 

예명이 시인 / 욱, 자라고 욱, 자르고?

 

 

사소한 변명을 밀어내자, 그가 욕을 퍼부었다. 그녀는 이별이라는 지느러미를 내밀었다. 눈빛이 푸른 칼은 도마 위로 올려졌다. 선명한 살점을 실컷 먹고도 죽지 않는다면 이런 욕을, 이런 비린내를 어떻게 발라내지?

 

그땐, 식성이 같아 사랑도 맛날 것 같았다. 은빛 단어가 욕으로 바뀌는 것은 꿈을 회 치듯 날렵했다. 그의 욱을 발견했을 때 혼자 울었다. 욱, 자라지 않길 바랐지만 냉동실에도 얼지 않았다.

 

그가 붉어진 채 창밖으로 나가고. 나무토막 같은 욱을 도마가 보고 있었다. 하얀 양파처럼 용서할 수 있는지. 상큼한 척 레몬이 될 수 있는지. 참을 수 있는 한계를 먹는 방법은 접시에 깔린 무가 되어.

 

그가 자리를 피한 것은 안도였다. 그녀는 눈물을 접어 다시 사람이 되기로. 그 순간, 생선머리를 놓치듯 날카로운 끝에 닿지 않았으니.

꽃병이 놓인 식탁으로 그녀를 옮겨야 하는데 팔처럼 긴 지느러미가 자라.

창밖은 몰려온 구름에 비를 맞고 있었다.

바람이 몸을 비틀어 나무를 감고 있었다.

 

그가 미안하다고 도마처럼 엎드릴 때, 그녀는 조용한 얼굴로 벌을 받았으니,

 

 


 

 

예명이 시인 / 난 헌옷이다

 

 

철 지난 옷 정리하다가 지푸라기로 변해가는 흰나비를 보았다

아직 통통한 줄무늬 스커트 토라진 모자 단발머리 반바지

그들만의 숨이 거칠게 납작하게 빛을 내고

너덜너덜 실밥 깨진 곳은 어머니 시절엔 밥풀 이였을

뿌리 뽑히면 아무것도 아닌

정리 되고 싶지 않은 것들이 다투어 줄을 선

한 때는 산소 먹고 별을 읽는 싱싱한 혈관을 자랑했다

찢기고 그늘 진 날개 운동하고 채식하면 건강한 시계 울리겠지

심장 헤치는 위험은 밟지 말아야하지

난 흰나비 난 헌옷

침 튀면 발끈 기울어질 허나 손질하면 입을 수 있는

주름 꼬이면 어떤가! 자존심 아직 시퍼런데

시침질 박음질 다툼 서너 겹 준 나이

헌옷으로 입문했으면 당당해야한다

양질의 탯줄 손가락 구분하지 않는 사랑

나는 원본이다

시간의 태를 입고 혈색 좋은

난 헌옷이다.

 

 


 

 

[2013년 시인동네 신인문학상 당선작]

예명이 시인 / 국경

―가자지구

 

 

찢어진 천처럼 펄럭이는 거리.

총알이 현재를 관통하면 구멍, 미래는 구멍 나 있겠죠.

구멍 나지 않은 구멍 보이나요.

 

널브러진 꽃들, 누가 총구멍을 분해했을까요. 아이가 탄피를 입으로 가져가요.   어린 손가락이 붉어요. 그녀는 꽃들을 둘둘 치워요.

 

폐허처럼 입 벌린 구멍으로 집이 걸려 있어요. 흉터 난 방이 서랍처럼 삐져나와요. 그녀가 두 벌의 빨래를 걷어요. 아이를 빨래처럼 둘둘 업어요.

국경을 넘어야 해요. 방금 쓰러진 꽃이 그녀 눈을 찔러요. 찔린 눈이 동그래져요.

국경을 넘을 수 있을까요.

업힌 아이 뒤로 몇몇 꽃이 생포되고 있어요.

가자, 어디요.

국경은 꽃을 받아주나요.

국경은 뿌리가 깊다죠.

구멍은 구멍을 연결해요. 내일도 구멍 나 있겠죠.

 

구멍 난 꽃이 흥건히 박혔어요.

 

〈2013 시인동네 신인상 당선작〉

 

 


 

 

예명이 시인 / 염습원

 

 

뼈에도 음절이 있다 만져지는

 

음절들

 

지상의 門이 닫힌다는 것은

몸을 다 썼다는 것

연주가 끝났다는 것

 

불후의 명곡이

연주되듯

시신을 단상에 올려놓고 염습원과 주검이 리듬을 탄다

 

케이스에 넣기 위해

첼로를 닦듯

 

지상으로부터 배당받은 몸

검은 현을 타고 있다

 

마지막 악장 흰 천으로 채워지고

 

만발하는 연주

 

마지막으로 터지는 꽃처럼

성부(聲部)의 베이스처럼

 

영혼의 밀이 자라는 곳

 

몸 한 장 지워 입문(入聞)하는

 

〈2013 시인동네 신인상 당선작〉

 

 


 

 

예명이 시인 / 서정의 내부

 

 

막의 안쪽이 궁금해요. 막막함 같은 것.

 

동쪽보다는 북쪽이. 흙을 뒤집어요. 구덩이를 파야 해요. 구덩이로 자란 구멍 검을까요. 꺾일 듯 흔들리는 풀을 봐요. 감각이 깊잖아요. 난 막의 뒤쪽까지 따보고 싶어요. 푸른 것의 암실은 푸를까요. 어둠은 사라질 기호.

 

막 안에 막이 있어요. 가장 선명한 빛은 뒤쪽에. 획일적인 것은 뒤집혀야 해요. 곡선이 직선을 따라가듯 꽃이 터지듯, 어둠을 따는 별을 봐요. 반짝여요. 본질을 훑어요. 난 순정의 반대편을 따고 있어요. 거품이 넘칠 때 스윽 거둬내는 연정.

 

질기도록 파란, 도파민.

 

예명이 시집『서정의 내부』2014. 시인동네

 

 


 

예명이 시인

본명: 이명예 2013년 필명: 예명이. 경기도 부천에서 출생. 2013년 《시인동네》를 통해 등단. 시집으로 『서정의 내부』(시인동네, 2014)가 있음. 2010년 수주문학상 우수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