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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남정 시인 / 꽃에 대한 예의
시들어버린 꽃을 버릴 때 아직 향기가 남아 있는 저 꽃잎은 어쩌나 아직 푸른 잎 매달린 저 뻣센 줄기는 어쩌나 그것들 순하게 썩어버릴 동안 기다려줄 땅 한 평은, 어디에 있나
오래 입은 속옷을 버릴 때 두 개의 젖무덤을 감싸던 브래지어 꽃물 빠지기도 전 얼룩진 속곳에 남아 있는 저 미열은 어디로 가나
[2018 새해 특집] 신춘문예(시) 우남정 시인 / 돋보기의 공식
접힌 표정이 펴지는 사이, 실금이 간다
시간이 불어가는 쪽으로 슬며시 굽어드는 물결 무심코 바라본 먼 곳이 아찔하게 흔들리고 가까운 일은 그로테스크해지는 것이다
다래끼를 앓았던 눈꺼풀이 좁쌀만 한 흉터를 불쑥 내민다 눈꼬리는 부챗살을 펼친다 협곡을 따라 어느 행성의 분화구 같은 땀구멍들, 열꽃 흐드러졌던 웅덩이 아직 깊다
밤이라는 돋보기가 적막을 묻혀온다 달빛이 슬픔을 구부린다 확실한 건 동근 원 안에 든 오늘뿐, 오무래미에 샛강이 흘러드는 소리, 쭈뼛거리는 머리카락이 먼 소식을 듣고 있다 몰라도 좋을 것까지 확대하는 버릇을 나무라지 않겠다
웃어본다 찡그려본다 쓸쓸한 표정을 지어본다 눈(目)에도 자주 눈물을 주어야겠다고, 청록 빛 어둠이 내려앉는 저녁 지금 누가 나를 연주하는지 주름이 아코디언처럼 펴졌다 접어진다
분청다기에 찻잎을 우리며 실금에 배어드는 다향(茶香)을 유심히 바라본다
먼 어느 날의 나에게 금이 가고 있다 무수한 금이 금을 부축하며 아득히 걸어가는 것이 보인다
우남정 시인 / 마트료시카
문 속에 문
뚜껑을 비틀거나 잡아당겨야 열리는
내 몸에는 문이 몇 개나 될까 나를 작동시키는 문을 바라본다
비밀을 간직한 창 잊어버린 비밀이 잊어버린 비밀을 기억해내는 이쪽과 저쪽의 경계
비밀은 안녕한가 나는 어떤 번호로 해제되어야 속살을 보일까 이 문을 열고 저 문을 닫는 순례들
빈방의 얼굴이 창백하다 비밀이 나를 만진다
너의 표정은 언제나 굳게 잠겨 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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