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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근상 시인 / 개운한 사랑
각시는 조금만 더부룩해도 끄억 끄억 나 좀 따 줘바요 바짝 붙어 앉아 치대는 거였습니다 나는 텔레비전에서나 보던 명의처럼 아니 뭘 먹었길래 소화도 못 시키고 헛구역질이랴 어깨부터 두드려 쓸어내리며 손 주무르다 엄지손가락 실감아 바늘로 콕 찌르면 검붉게 흐르는 핏물 바라보다 쳇지 쳇지 거봐 체한 거 맞지 그려 그려 쳇구먼 쳇어 장단 맞추어 덩달아 끄억거려 보듬어 주면 흡족해 하다 잠들고 새벽이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 일어나 도시락 싸고 와이셔츠 다리고 머리감고 출근 준비로 바쁜 거였습니다 사랑은 쳇기 같은 것이어서 어깨 두드려주고 팔 쓰다듬고 손 주물러줘야 개운해지나 봅니다
《우술 필담 雨述 筆談》 (솔, 2018)
육근상 시인 / 절창(絶唱)
일흔 노인 소리를 듣는다 극음에서는 관악기 소리가 나는 걸까 하도 불어 속이 다 닳아버린 오죽烏竹의 숨구멍으로 잘 익은 퉁소 소리 난다
참, 처량하기도 하다
두우도우 갸릉거리다 중모리로 간신히 넘어가는 저 노인 앓는 소리는 지금 애미哀未고개 넘어가는 중이다
끊어질 듯 이어지고 이어지다 끊어지는 중고제 낯익은 소리, 절창絶唱이다
《절창》(솔, 2013)
육근상 시인 / 가을 칸나
양철 지붕 집 병 깊은 엄니 누워 계시다 볕 좋은 마당 간신히 걸어 나와 누가 뒤꼍에 불 놓았나 저놈의 꽃 덩어리 성냥불 같네 탁! 하고 켠 성냥불 같네
《절창》(솔, 2013)
육근상 시인 / 만개(滿開)
꽃놀이 갔던 아내가 한 아름 꽃바구니 들고 흐드러집니다
선생님한테 시집간 선숙이 년이 우리 애들은 안 입는 옷이라고 송이송이 싸준 원피스며 도꾸리 방 안 가득 펼쳐놓았습니다
엄마도 아빠도 없이 온종일 살구꽂으로 흩날린 곤한 잠 깨워 하나하나 입혀보면서
아이 예뻐라 아이 예뻐라
《만개》(솔, 2016)
육근상 시인 / 곡우
얼마나 독한지 땅개라는 별명으로 살더니 아랫집 살며 밤낮으로 어지간히 괴롭히더니 가뭄 길어진 날 입원했다며 전화 왔습니다 지가 하지 못하고 아들 시켜 다 죽어가는 소리로 왔습니다
즈 집 앞 지나려면 통행세 내야 한다고 50년 전 뜯긴 5원 꼭 받아내야지 올라간 것인데 호랭이 물어갈 년 아프지나 말든가 아이고, 쌍눔시키 난 이렇게 늙었는디 하나도 안 늙었네
얘기 듣던 젊은 여자 호호호 밖으로 나가니 작은며느리랍니다 요새 이런 며느리 어디 있느냐 문틀 놓아둔 난 잎에 말 건네자 금방 목이 멥니다 조금 더 살았으면 좋겠다고 빗소리로 훌쩍입니다
『창작과비평』 2017년 가을호, 《우술 필담 雨述 筆談》 (솔, 2018)
육근상 시인 / 가래울
성당 다녀온 각시가 뭣혔냐 묻기에 넘이사 뭣 헌게 왜 궁금헌 것이냐 혔더니 여태껏 빨래혀주고 밥혀주고 애까지 놓아줬는디 넘이라니 아이고 분햐 분햐 그러더니 오늘 크리스마슨디 뭣혔냐 또 묻기에 어둥이골 김시인 허고 돼지 껍데기 볶아 즘심 겸 소주 둬병 마시고 헤어졌다 허니 아무 소리 읎이 한 참 들여다 보다 시방은 뭣혀고 싶냔다 솔직히 말혀도 되냐 혀니 솔직히 말혀도 괞찬다 허여 날도 춥고 눈발까지 날리니 오디 콩밭에 나가 꿩이나 멫마리 잡았으면 좋겄다 혀자 그렇게 혀 그렇게 허셔 이 화상아 그렇게 혀라 구들구 떠대 밀어 팽나무 아래까지 왔다 팽나무에는 길다란 쇠 종 매달려 있어 뜻 헌 바 잘 되지않는 날이면 이마빡 들이 받아 보기도 혔던 것이서 오늘은 가래울 이 작은 마을에서 꿩 잡으러 가자 꿩 잡으러 가자 쇠 종은 울린다 웽뎅그렁 울리는 것이다
《우술 필담 雨述 筆談》 (솔,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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