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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육근상 시인 / 개운한 사랑 외 5편

by 파스칼바이런 2021. 8. 22.

육근상 시인 / 개운한 사랑

 

 

각시는 조금만 더부룩해도

끄억 끄억 나 좀 따 줘바요

바짝 붙어 앉아 치대는 거였습니다

나는 텔레비전에서나 보던 명의처럼

아니 뭘 먹었길래 소화도 못 시키고 헛구역질이랴

어깨부터 두드려 쓸어내리며 손 주무르다

엄지손가락 실감아 바늘로 콕 찌르면

검붉게 흐르는 핏물 바라보다

쳇지 쳇지 거봐 체한 거 맞지

그려 그려 쳇구먼 쳇어 장단 맞추어

덩달아 끄억거려 보듬어 주면

흡족해 하다 잠들고

새벽이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 일어나

도시락 싸고 와이셔츠 다리고

머리감고 출근 준비로 바쁜 거였습니다

사랑은 쳇기 같은 것이어서

어깨 두드려주고 팔 쓰다듬고

손 주물러줘야 개운해지나 봅니다

 

《우술 필담 雨述 筆談》 (솔, 2018)

 

 


 

 

육근상 시인 / 절창(絶唱)

 

 

일흔 노인 소리를 듣는다

극음에서는 관악기 소리가 나는 걸까

하도 불어 속이 다 닳아버린 오죽烏竹의 숨구멍으로

잘 익은 퉁소 소리 난다

 

참, 처량하기도 하다

 

두우도우 갸릉거리다

중모리로 간신히 넘어가는 저 노인 앓는 소리는

지금 애미哀未고개 넘어가는 중이다

 

끊어질 듯 이어지고 이어지다

끊어지는 중고제 낯익은 소리, 절창絶唱이다

 

《절창》(솔, 2013)

 

 


 

 

육근상 시인 / 가을 칸나

 

 

양철 지붕 집

병 깊은 엄니 누워 계시다

볕 좋은 마당 간신히 걸어 나와

누가 뒤꼍에 불 놓았나

저놈의 꽃 덩어리

성냥불 같네

탁! 하고 켠 성냥불 같네

 

《절창》(솔, 2013)

 

 


 

 

육근상 시인 / 만개(滿開)

 

 

꽃놀이 갔던 아내가

한 아름 꽃바구니 들고

흐드러집니다

 

선생님한테 시집간

선숙이 년이

우리 애들은 안 입는 옷이라고

송이송이 싸준 원피스며 도꾸리

방 안 가득 펼쳐놓았습니다

 

엄마도 아빠도 없이

온종일 살구꽂으로 흩날린

곤한 잠 깨워

하나하나 입혀보면서

 

아이 예뻐라

아이 예뻐라

 

《만개》(솔, 2016)

 

 


 

 

육근상 시인 / 곡우

 

 

얼마나 독한지 땅개라는 별명으로 살더니

아랫집 살며 밤낮으로 어지간히 괴롭히더니

가뭄 길어진 날 입원했다며 전화 왔습니다

지가 하지 못하고 아들 시켜 다 죽어가는 소리로 왔습니다

 

즈 집 앞 지나려면 통행세 내야 한다고

50년 전 뜯긴 5원 꼭 받아내야지 올라간 것인데

호랭이 물어갈 년 아프지나 말든가

아이고, 쌍눔시키 난 이렇게 늙었는디 하나도 안 늙었네

 

얘기 듣던 젊은 여자 호호호 밖으로 나가니

작은며느리랍니다

요새 이런 며느리 어디 있느냐 문틀 놓아둔

난 잎에 말 건네자 금방 목이 멥니다

조금 더 살았으면 좋겠다고 빗소리로 훌쩍입니다

 

『창작과비평』 2017년 가을호, 《우술 필담 雨述 筆談》 (솔, 2018)

 

 


 

 

육근상 시인 / 가래울

 

 

 성당 다녀온 각시가 뭣혔냐 묻기에 넘이사 뭣 헌게 왜 궁금헌 것이냐 혔더니 여태껏 빨래혀주고 밥혀주고 애까지 놓아줬는디 넘이라니 아이고 분햐 분햐 그러더니 오늘 크리스마슨디 뭣혔냐 또 묻기에 어둥이골 김시인 허고 돼지 껍데기 볶아 즘심 겸 소주 둬병 마시고 헤어졌다 허니 아무 소리 읎이 한 참 들여다 보다 시방은 뭣혀고 싶냔다 솔직히 말혀도 되냐 혀니 솔직히 말혀도 괞찬다 허여 날도 춥고 눈발까지 날리니 오디 콩밭에 나가 꿩이나 멫마리 잡았으면 좋겄다 혀자 그렇게 혀 그렇게 허셔 이 화상아 그렇게 혀라 구들구 떠대 밀어 팽나무 아래까지 왔다 팽나무에는 길다란 쇠 종 매달려 있어 뜻 헌 바 잘 되지않는 날이면 이마빡 들이 받아 보기도 혔던 것이서 오늘은 가래울 이 작은 마을에서 꿩 잡으러 가자 꿩 잡으러 가자 쇠 종은 울린다 웽뎅그렁 울리는 것이다

 

《우술 필담 雨述 筆談》 (솔, 2018)

 

 


 

육근상(陸根箱) 시인

1960년 대전에서 출생. 1991년 《삶의 문학》에〈천개동〉 외 5편의 시를 발표하며 등단. 시집으로 《절창》(솔, 2013), 《만개》(솔, 2016), 《우술필담》(솔, 2018) 등이 있음. 2016년 문화예술위원회에서 창작지원금을 수혜. 가톨릭대학교 대전성모병원 뇌신경센터 임상병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