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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사이 시인 / 사랑은 어디에서 우는가
재개발도 안 되고 철거만 가능하다는 곳 삶이 문턱에서 허덕거린다 햇살은 아무것이나 붙들어 들어갔다 뺏다 하고 선과 악이 날마다 쌈박질하며 그 속으로 더욱 궁둥이를 들이밀고 달아나려 매번 자기를 죽이면서도 눈을 뜨는 내 바닥 불륜의 씨앗이 작은 방죽처럼 둥그렇게 모여 있는 닭장촌, 정착지도 모르고 날아들었다가 가로등 불빛에 타죽어가는 날벌레 목숨 같은 오누이가 사랑을 하고 사촌오빠가 누이를 범해 애를 낳는 그곳 온몸 짙푸른 얼룩을 감추기 위해 더워도 옷을 벗지 않는 엄마가 얇은 시멘트 벽 옆집 남자랑 도망가 없어도 어른이 되어가는 그곳 수많은 세대들이 서너 개의 공동화장실을 들락거리는 그곳 문밖에 버려진 작은 화초들, 으깨진 보도불록에서 솟아나는 풀들 바닥 틈 속에서 살랑살랑 흔들리고 있다 간혹 보일 듯 말듯 한 꽃도 토해놓고
나 도망가다 멈춰 선 그곳
김사이 시인 / 어느 늦은 밤
지하철을 타려고 섰다 바닥에 그어 놓은, 넘지 말아야 할 선에 그물처럼 얽혀 있는 사람들 제 밥그릇만한 고단함이 얹혀져 늘어뜨린 어깨 사이로 닮았다 평일 늦은 시간 종로3가역 소리마저 가라앉은 채 고요하다
저 깊은 속 내장까지 흔들어대며 달려오는 지하철 문이 열리자 비릿한 냉기가 끼친다 사람들은 무심히 지나치고 안경 쓴 여자 한 명 선을 비켜나 장승처럼 서 있다 무리들 속에서 울려나온 '어! 저 여자 맹인이네, 이거 막찬데...' 말이 지하철 안에서 맴돌고
세상의 모든 불빛들이 어둠 속으로 타들어간다 글세, 길은 아직 멀었나 보다
김사이 시인 / 숨어 있기 좋은 방
누가 들고 나는지 모르는 벌집들 한쪽 방에서 가늘고 거친 숨소리가 뒤엉켜 절정에 다달아가고 다른쪽 방에서는 악다구니와 와장창 소리가 장단을 맞춘다 그리고 밤새 열고 닫히는 문소리들 그 사이에 내가 숨는다
햇빛 거부한 창은 틈을 만들지 않고 빗물 배인 거무튀튀한 천장이 끌어당기고 형광등에 대롱대롱 집 지은 거미가 있는 좁은 부엌 시멘트 바닥에 바지 까고 오줌을 갈겨도 아무도 욕하지 않는 이곳 가끔 삶이 쉬러 가자 한다 간밤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누구도 무심한 아침이면 멀쩡하게 출근을 하고 슈퍼에 가고 산에도 가고 시원한 바람이 가슴 속을 헤집어도 그저 비슷한 것 같은 땅 위 삶이 무어 대단치도 않으나 자꾸만 웅크려지고 안으로 말리는 내 몸뚱이다 태어나면 모두 잊어버리지만 엄마로부터 세상의 소리들을 모두 듣는다는 자궁 속 태아 이곳에서 다 드러내놓고 뒹굴뒹굴한다 애기처럼 자궁과 세상이 하나될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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