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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이정록 시인 / 별 외 4편

by 파스칼바이런 2021. 8. 31.

이정록 시인 / 별

 

 

네모 안에 동그라미를 넣는 방법은?

이슬이 잘 알지.

아침마다 이슬은

거미줄 네모 칸에 들어갔다가 나오니까.

 

동그라미 안에 네모를 넣는 방법은?

그건 모두가 잘 알지.

둥근 마음에 미움을 품는 거지.

뾰족한 모서리는 빠져나가지도 않지.

 

그럼 동그라미 안에 별을 넣는 방법은?

그건 네가 잘 알지.

네 동그란 눈망울에는

늘 별이 떠 있으니까.

 

 


 

 

이정록 시인 / 성행위

 

 

꿈을 적어보라고 했다

머리를 긁적이다가

쑥스러워서 한 손으로 종이를 가렸다

 

 

아버지가 다짜고짜

머리통을 쥐어박았다

뭘 잘했다고 식식거리냐고 화를 냈다

머리를 문지르려고 팔을 들어 올리자

나의 당찬 미래가 드러났다

 

성장하는 나

행동하는 양심

위로할 줄 아는 어른

 

 


 

 

이정록 시인 / 시-어머니학교 10

 

 

시란 거 말이다

내가 볼 때, 그거

업은 애기 삼 년 찾기다.

업은 애기를 왜 삼 년이나 찾는지

아냐? 세 살은 돼야 엄마를 똑바로 찾거든.

농사도 삼 년은 부쳐야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며

이 빠진 옥수수 잠꼬대 소리가 들리지.

시 깜냥이 어깨너머에 납작하니 숨어 있다가

어느 날 너를 엄마! 하고 부를 때까지

그냥 모르쇠하며 같이 사는 겨.

세쌍둥이 네쌍둥이 한꺼번에 둘러업고

젖 준 놈 또 주고 굶긴 놈 또 굶기지 말고.

시답잖았던 녀석이 엄마! 잇몸 내보이며

웃을 때까지.

 

 


 

 

이정록 시인 / 문병

 

 

할머니가 입원하자 빈집 마루 귀퉁이

물걸레가 제 본래 모습으로 돌아가고 있다

그 옛날 할머니가 입고 다녔던 헌옷으로 부풀고 있다

이웃집에 맡긴 누렁이와 문병이라도 가겠단 건가

봄바람의 바짓가랑이 부여잡고 읍내까지 다녀오겠단 건가

그놈의 환자복 벗어버리고 이 누더기라도 걸치라고

이 옷 입었을 때가 그래도 춘삼월이었다고

눈물 콧물 다 떠나보낸 빈털터리 마루 끝에 나앉아 있다

 

 


 

 

이정록 시인 / 영혼의 거처

 

 

개구리의 눈은 쌍무덤이다

저승을 열었다 닫았다 이승 쪽에 긴 혀를 내민다

오뉴월에 상을 치러본 사람은 안다 곡비哭婢의 무덤이다

등에는 산판 작업복을 배에는 상복을 지어 입었다

 

개구리의 영혼은 뒷다리에 있다

넓적다리의 무게가 없다면 물 밖으로 눈을 내놓을 수 없다

먼 하늘로 날아가고 싶은가 물밑 하늘에 배를 대고

구름의 능선을 넘는 상여처럼 비스듬하게 떠있다

뒷다리에서 얼이 빠져나가면 수장水葬이다

상복이 하늘 쪽으로 뒤집힌다

 

사람의 영혼도 머리나 심장에 있는 게 아니다

허벅지에 있다 위엄 있게 죽는 게 소원이지만

병실에 눕혀진 채 자신의 눈자위에 무덤을 파는 사람들

나날이 솟구치는 *사성(莎城), 침상 머리맡 좀 올려달란 말과

죽을 것 같다는 말이 남은 열 마디 가운데에 여덟아홉이다

귓구멍이며 혀뿌리까지 구름이 몰려들건만

새 다리를 허우적이며 바깥세상에 시비도 걸고 싶다

 

침대 좀 세워 줘!

꺼져드는 묘혈(墓穴)을 링거 줄이 잡아당긴다

수액이 스미는 만큼 가라앉는 뒤통수, 이장(移葬)한 무덤자리처럼

베개도 쉬이 꺼진다 땅땅했던 영혼이 졸아들기 때문이다

등짝 어디께로 운석이 떨어진다 화상이 깊다

등창(燈窓), 부화의 실핏줄이 번지기 시작한다

뒤통수가 어린 새의 부리 같다

 

세웠던 침상을 뉘고, 야윈 새처럼 등을 보이며 엎드린다

비상을 도우려는 의사와 간호사의 흰 날개깃이 바빠진다

죽음은 영혼을 부화시키는 일, 허벅다리에서

배까지 올라온 영혼의 새가 머릿속으로 치고 올라온다

이윽고 숨이 멎는다 발끝부터 정수리까지 흰 깃털이 스르륵 덮힌 다

수평을 잡고 하늘을 나는 새 한 마리, 구름장(葬)에서

다리가 긴 빗줄기가 내린다

 

장례식장 사층, 신생아실에선

겨우 발가락만 내민 올챙이들이 물장구를 친다

작은 주둥이가 햇살에 마르지 않도록

탯줄의 이똥이 천천히 떨어진다, 강보에 누워

다리를 들고 꼼작인다 첫 걸음마는 날갯짓을 닮으리라

발가락 끝마디에 물방울 추를 매달고

허공에 걸음마를 내딛는 어린 영혼들

 

*사성(莎城) : 묘혈(墓穴)을 보호하기 위해 무덤 뒤에 반달 모양으로 둘러막은 둔덕.

 

 


 

이정록 시인

1964년, 충남 홍성군 출생. 공주사범대학 한문교육과를 졸업. 고려대학교 대학원 문학예술학과 수료. 199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부문 '혈거시대' 당선 데뷔. 1994년 첫시집 <벌레의 집은 아늑하다>. 1996년 <풋사과의 주름살>. 1999년 <버드나무 껍질에 세들고 싶다>. 2001년 <제비꽃 여인숙>. 천안청수고등학교 교사. 윤동주문학대상. 2017.7 제5회 박재삼문학상. 2002 제13회 김달진 문학상 시부문. 2001 제20회 김수영 문학상 수상. 만해문예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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