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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정수경 시인 / 꽃 옆에 서있는 돌 외 2편

by 파스칼바이런 2021. 9. 2.

제10회 《詩로 여는 세상》신인상 당선작

정수경 시인 / 꽃 옆에 서있는 돌

 

 

풋내가 사방으로 번지는 봄 끝물

철쭉꽃 배시시 붉은

입풋술 벌어지는 소리에

감감하던 화강암

온몸을 열어 귀기울인다

 

초식공룡의 발소리 잠재운 불 속

암반이었던 바닷속 어느 모퉁이

옛 기억이 불씨로 박혀 있다

 

자꾸만 뜨거워지는 열기

벗어나려 할수록 허물어지던 날

몸을 털어 불길 밀어내면서

더 굳어지던 몸피

 

뼛속 깊이 숨겨 두었던

검은 파도소리 토해낸다, 한 번 데인

마음은 더 이상 금가지 않는다고

누가 그러던가

붉은 꽃 필수록 바닷속 일렁거리는 기억

핏빛 불꽃으로 타오른다

 

 


 

 

정수경 시인 / 틈

 

 

가구 배치 바꾸느라 장롱을 옮겼다

한쪽 발 꽉 물고 놓지 않는 십 원짜리 동전

장판에 새긴 제 기억

 

물고 있던 이빨 헐거워질 때마다

발꿈치 치켜들고 버텨온 시간

장롱의 무게보다 불빛 없는 방안

캄캄한 무게가 더 무거웠다

 

밤마다 틈이 벌어지는 소리 들렸다

속 헤집고 그림자만 있는 아이들이 들어가고

침대 중앙으로 흐르는 냉기

점점 그 영역을 넓혀갔다

 

산부인과 출입문 여닫는 횟수만큼

벌어진 틈 메워졌다

삐걱거릴 기미 보이면 발꿈치 더 높이 들었다

마지막 여덟 번째 처방전으로

이식된 뿌리

발 뻗느라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장롱을 떠받치는 동전의 힘줄 단단해지고 있었다

 

 


 

 

정수경 시인 / 딸꾹질

 

 

어머니가 택배로 뽕잎을 보내주셨다

말린 뽕잎 물에 불려 알싸한 기억 우려낸다

 

가시랭이 일어 피 묻은 손가락으로 몇 번씩

묶어 보낸 얼룩진 뽕잎 봉지

누에고치 실 풀듯 푼다

뽕잎에서 사각사각 빗소리 들린다

 

나와 다섯째는 뽕잎이 모자라

어머니를 갉아먹고 섶으로 오르던

먹성 좋은 누에였다 뽕잎에 묻어온

허기진 시간들 지우던 어머니

의 뭉개진 지문이 명치에 걸린다

 

파랗게 놀란 횡경막 경련을 일으킨다

딸꾹, 어머니

깎지 않아도 짧기만 한 손톱의 내력 딸꾹

밥줄 가는 곳마다 사방

딸꾹 딸꾹, 가래톳 같은 멍울이 선다

 

 


 

정수경(鄭水鏡) 시인

1960년 경북 문경 출생. 한국방송통신대 국문학과 졸업. 2008년 <詩로 여는 세상>으로 등단. '비유와 상징' 동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