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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성은 시인 / 시월의 낮과 밤
어린 시절 마당 수돗가에서 넋을 잃고 바라보던 구름이 지금도 간혹 지나간다
눈으로 따라가다 보면 멀어져 사라지고 다음 구름이 나타난다
아주 천천히 오랜 시간에 걸쳐 눈앞에 나타나는 구름
앙고라 스웨터의 토끼털이 빠지는 시간처럼 주인이 돌아오길 기다리는 굴뚝의 긴 목처럼 누군가 정지 버튼을 누른 지루했던 스무 살처럼 낡은 통 속에 동전을 모으는 시간처럼
그러다 깊은 통 속에 손을 집어넣으면 닿지 않고 팔이 들어가고 나면 머리도 다리도 들어가 다신 빠져나오지 못할 것 같은
밤이 당도했다
강성은 시인 / 뭇국의 맛
서울식 소고기 뭇국을 먹는 경상도 사람은 경상도식 소고기 뭇국을 먹는 서울 사람의 식감을 이해할 수 있을까
경상도식 소고기 뭇국을 먹는 서울 사람은 서울식 소고기 뭇국을 먹는 경상도 사람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까
말없이 국을 먹는 일요일 저녁
둘은 모두 서울에 있다
들판에서 무가 자란다
강성은 시인 / 은하철도의 밤
엄마는 문을 걸어 잠갔다 티브이를 보고 있던 우리는 육중한 소리에 놀라 엄마를 보았는데 엄마는 아무렇지 않은 듯 생밤을 칼로 벗겨내고 있었다 티브이에선 철이가 기차 차창 밖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기차 밖의 불완전한 사람들을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정말 가지 않겠냐고 함께 가자고 다급한 목소리와 비장한 목소리와 우는 목소리 우리는 불안한 눈으로 엄마를 보았다 엄마는 천천히 밤을 까고 있었다 날카로운 밤가시가 바닥에 수북이 쌓여 있었다
밖에선 사이렌 소리와 비명이 울려 퍼졌다
절대 문을 열어선 안 돼 우리는 울음을 터트렸다
기차는 천천히 더 먼 곳을 향해 가고 철이의 미래는 완전할 수 있을까
아직 문을 열어선 안 돼
밤을 까던 엄마가 피투성이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울고 있었다 무서운 밤이었다
강성은 시인 / 벌레
이사간 집에 짐을 풀자 어디선가 이상하게 생긴 벌레가 기어 나왔다 저건 돈벌레야 우린 부자가 되겠어 엄마가 큰 소리로 웃었다 엄마가 너무 오랜만에 웃어서 어색하고 기뻤다 돈벌레가 자꾸만 기어 나와서 우리는 금방 부자가 될 것 같았다
작은 단칸방에 너무 많은 벌레들이 살고 있었다 개미 파리 지네 풍뎅이 엄마는 더 이상 웃지 않았다 엄마를 웃게 해주려고 나는 벌레가 되어야지 생각했는데 엄마가 먼저 벌레가 된 것 같았다 나타났다 사라졌다 하더니 어느 날부터 보이지 않았다
벌레가 된 것은 나였을까 엄마였을까 작은 방에 남겨져 혼자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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