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시인과 시(현대)

송종규 시인 / 중세의 잠깐

by 파스칼바이런 2021. 9. 4.

송종규 시인 / 중세의 잠깐

 

 

오렌지 빛 시간에 막 당도 했네

사소한 것들이 모여 그리운 풍경을 만드는

이 시간은 중세의 유물 같은 거

횡대를 이룬 가로수가 공중에 머리를 박고 있고

공원은 온통 먼데서 온 당신의 전언들,

오렌지 빛 이 시간은 한 사람의 생애에 어깨 구부정한

오십의 어느 하루를 덧댄 것이라네

두렵고 벅차서 뒷걸음질 쳤지만

오렌지 빛 시간에 막 당도 했네, 웅숭깊은

초겨울의 적막 속으로 스며들어갔을 뿐인데

공중 높이 아주 오래 전에 본 듯한 텅 빈

얼굴 하나가 걸려 있네

우리가 언제 만난 적 있었는지, 키 큰 자작나무처럼

오래도록 마주 서서 바라본 적 있었는지

두렵고 눈부셔서 뒷걸음질 쳤지만

오렌지 빛 시간에 막 당도 했네

중세의 아주 잠깐,

 

반년간 『상상인』 2021년 창간호 발표

 

 


 

송종규 시인

경북 안동에서 출생. 효성여대 약학과 졸업. 1989년 《심상》 신인상을 통해 등단. 시집으로 『그대에게 가는 길처럼』 (둥지, 1990), 『고요한 입술』(민음사, 1997), 『정오를 기다리는 텅 빈 접시』(시와반시사, 2003), 『녹슨 방』(민음사, 2006), 『공중을 들어올리는 하나의 방식』(민음사, 2015)이 있음. 2005년 대구문학상 과 2011년 제31회 대구시 문화상(문학부문), 2013년 제3회 웹진『시인광장』 시작품상, 2015년 제13회 애지문학상, 2017년 제10회 웹진『시인광장』 선정 올해의좋은시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