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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용산 시인 / 말뚝을 뽑으며
말뚝 뽑으려 흔들었다 아무리 흔들어도 흔들리지 않는 땅이었다 땅 속을 파니 죽을힘으로 말뚝을 물고 있는 흙을 보았다 네가 있어 말뚝이었구나 뚫어오는 힘으로 맞서 저 스스로 단단해진 흙살이여! 서로를 물고 있는 너를 다 드러내고서야 비로소 말뚝이 뽑혔다.
안용산 시인 / 향기는 코로부터 오지 않는다
문득 무엇인지 모르지만 화들짝 놀라고 있다 무엇일까
그렇구나 향기는 코로부터 오지 않고 이렇게 온몸으로 오는구나 이미 알고 있는 것에는 놀라지 않았다
알 수 없는 곳으로부터 다가와야 꽃이다
안용산 시인 / 바닥이다
떠날 때가 되었다
바람으로 내려앉아 떠오르는 꽃씨 하나 지가 살아야 할 디를 찾는다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아 바람도 지쳤는지 꽃씨에 의지하여 살짝 가라앉은 그곳이다
민들레 당기고 있었다
안용산 시인 / 저것 몸 봐
저것 좀 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보이지 않는 물 가운데 거꾸로 흐르는 저것 좀 봐
살아 있어 거꾸로 흐를 줄 알았는지 어느새 오 저만큼 자랐구나
네가 있어 또랑이 이렇게 살아 있구나
송사리 떼 좀 봐
안용산 시인 / 나를 보았다
저를 알지 못한다
자기 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장구는 자기 소리를 들을 수 없어 꽹과리 소리를 들을 수 있었고 더러 징소리를 들으면서 북소리와 어울리고 있었다
다른 소리를 잊고 자기 소리를 듣게 될 때면 소리들이 놀라 서로 바라보는 것을 알았다
자기를 듣지 못해 답답하거나 불편하지 않았고 듣지 못할수록 더욱 신이 나 두드리고 있었다
마침내 너를 보았다
안용산 시인 / 가을걷이
알과 껍질은 하나였다
알이 껍질이었고 껍질이 알이었다 나눌 수 없는 수염을 떼어냈을 때 하나를 둘이라 하였다
처마 안 줄 옥수수 거꾸로 매달려 둘이 하나가 되려고 거을 햇살 거두어들이고 있다
안용산 시인 / 돌고 돌아라
나비가 날고 있다
제 몸에 없는 또 다른 바람이 분다 꽃바람이여 돌고 돌아라
장구가 지금까지 들어본 적이 없는 가락으로 두드리고 있었다
안용산 시인 / 배려 1
풀 하나 제대로 있지 못한다
자라기만 하면 여지없이 잘린다 잘릴 때마다 냄새로 구름 씨앗을 키우더니 하늘로 올라 다른 풀씨들과 더불어 비가 되어 내린다 비가 내리는 만큼 잘리지 않구 자란 풀들이 날카롭게 날을 세우고 있다
폭우에도 끄덕하지 않을 논둑 세우고 있었다
안용산 시인 / 배려 4
나뭇잎이 떨어지고 있다
나뭇잎은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바람을 몰고 다니고 있었다 이리저리 구석에 자리를 잡는가 하였더니 다시 더 큰 바람을 일으키고 서로를 당겨 그늘을 키우고 있었다
몇 년 후에 솟아오를 나무 보란 듯 키우고 있었다
안용산 시인 / 배려 11
나무 하나 심었다
겨울나기 위하여 따뜻한 짚으로 동여매었지만 살아나지 못하였다 차가운 겨울 견딜 수 없는 나무라는 것을 죽은 뒤에야 알았다 그래 나무도 얼음으로 살아야 한다고 물을 뿌려 얼음으로 한겨울 나고 있는 겨울나무여!
불보다 뜨거운 얼음이었다
안용산 시인 / 배려 14
연은 날고 있다
바람 한 점 없어도 연을 띄우는 사람 일고 있다
바람은 불지 않는다
안용산 시인 / 배려 18
아이가 웃고 있다
눈을 굴려 눈사람이 된 지금이야 웃고 있지만 끝내 녹아 눈물이 될 것이라는 것을 아이가 된 눈사람은 알고 있었다
아이가 울고 있다
안용산 시인 / 바람은 다시 분다
1. 장구 소리를 보라 소리에는 마디가 있다
아무리 힘든 날이라도 견디는 마디가 있어
휘어질지언정 부러지지 않는 바람이 살고 있다
휘어지는 만큼 바람은 태어날 소리를 위하여 제 자리를 비운다
2. 비우면 비울수록 단단한 마디가 되어 멀어진다
마디가 마디를 넘어 어디가 마디인 줄 몰라 숨 찰 때 비로소 돌아오는 바람이다
마디와 마디 서로 넘을 수 없는 소리가 살고 있다.
3. 서로 넘을 수 없는 소리가 있어 멈출 수 없다
그럴 때마다 서로 밀고 당기는 산이 된다
산과 산이 맺고 풀어 산비둘기를 낳는다
4. 이산 저산 부르는 산비둘기 나뭇잎을 키우고
나뭇잎은 또 그늘이 되어 소리를 키운다
그 소리를 따라 구름이 모여들고 구름 끝에 산비를 키운다
5. 빗소리 끝 이 골짝 저 골짝 산비둘기 운다
해가 지도록 울어도 끝이 보이지 않던가
나뭇잎이 더욱 짙어간다
안용산 시인 / 갈 수 없는 고향이다
몇날 며칠을 지나도 가닿을 수 없는 길이다
고향을 떠나본 적이 없어 나도 볼 수 없는 고향이 그곳에 있다 TV를 통해서 통하여서만 볼 수 있는 길이다
떠나지 못해 점점 멀어져가는 고향이여!
안용산 시인 / 어쩐댜
삿갓배미 논을 갈자면 참말로 어려운 것이여
이제는 내놓아두 부칠 사람 없는 삿갓배미를 어쩐댜 어디서부터 쟁기를 대여야 할 지 몰라 어쩐댜 하면서두 할 것을 다 하였던 살가운 맘들이 모여 저물고 있다
그렁그렁 떠오르는 눈동자 그대여!
안용산 시인 / 명아주로부터
그늘진 마당귀마다 피었다
해마다 실하게 자랐지 다 자란 자식들 모두 떠나 노인뿐인 마을 언제 다시 올까 기다리는 날만큼 꽁꽁 동여맨 빗자루 늘어만 갔다
쓸리지 않는 그늘이었다
안용산 시인 / 찔레꽃으로부터
너와 나 하나였지
가을걷이하면서 물을 빼 흙마저 저 스스로 힘을 쓸 수가 없었는지 무너진 논둑을 다시 붙인다 물인지 흙인지 나눌 수 없는 논물을 당기고 밀 때마다 산비둘기 힘을 보태더디 점점 멀어져 간다 멀어져 가는 만큼 베가 고파 올 때 쯤 누가 논물로 출렁 힘을 보태고 있다
찔레꽃 피고 있었다
안용산 시인 / 물로부터
어린 고추모 심는다
흙살은 조심조심 무너졌다 지가 고추인 듯 다소곳하게 뿌리를 펴 서로를 껴안고 축축하게 세우기 시작하였다 바람 오기 전 넘어지지 않으려 묶고 있는 것이다
바람이 당긴 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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