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시인과 시(현대)

정원도 시인 / 가수의 꿈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1. 9. 4.

정원도 시인 / 가수의 꿈

 

 

키가 너무 작다고 키득키득

"난쟁이 뭐만하다"고

걸핏하면 동네 어른들 입에 오르내리던

토골댁 둘째 아들

학교도 다니는 둥 마는 둥

농사짓는 데는 저보다 백배 더 중한 소 한 마리

풀 뜯어 먹인다고 몰고 나가더니

아버지 몰래 그 소 팔아 가수의 꿈을

결행했다

비명에 간 배호 노래가

청춘들의 가슴을 저미던 때

라디오 지방방송 음악프로에

간간히 몇 번인가 흘러나오더니

소 풀 뜯어먹는 소리로 부르던

애잔한 노래도 막 잊혀져갈 무렵

아침마다 더운 김이 피어오르던 외양간에는

들일 나가야 하는 소는 보이지 않고

그 소와 맞바꾼 노래조차

종적을 감추었다

 

 


 

 

정원도 시인 / 야간정비

 

 

쇠를 갈아낸다는 것은

누군가의 살을 아프게 갈아내는 일

 

마멸된 쇠의 파편들이

스스로 몸을 갈아 어둠을 밝히다가

명멸하는 찰나의 개화가

고속으로 돌아가는 연마기 날 끝에서

피어난다

 

날려 보낸 입자들이 일제히

세찬 바람에 되살아나

시린 꽃이 되어 스러지는 야간노동

심야의 허공을 갈아내듯

두 눈 부릅뜬 연마가 계속되면

 

나도 저같이 아름다운 불꽃으로 돌진해가는

당신의 따스한 별이 되고 싶었다

 

 


 

정원도 시인

1959년 대구에서 출생. 대구공업고등학교 졸업. 1985년 《시인》誌를 통해 작품활동 시작. 시집으로 『그리운 흙』(시인사, 1987)과 『귀뚜라미 생포작전』(푸른사상, 2011)이 있음. (전)한국작가회의 감사, (전)한국작가회의 연대활동위원장, 분단시대동인으로 활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