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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권순자 시인 / 소금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1. 9. 4.

권순자 시인 / 소금

 

 

아버지 입원 중이시다

다 떠나간 염전에서

끝까지 바다를 일구시더니

이제 소금기만 남아 누워 계시다

단단하고 올곧으시던 몸 용해되어

이젠 형체조차 알아볼 수 없다

그가 흘린 땀, 그 소금이

내 온몸 혈관을 타고 흐른다

그가 지고 나르시던 소금의 무게가

죽음의 무게로 흔들릴 때마다

내 늑골에서도 죄스런 소금 알갱이가 맺혔다

내가 허우적거릴 때마다 잡아주시던 손

흰 꽃가루 묻어나던 그 손이

곁에 있어도 마냥 그리워지는 날

아버지의 머리에서는

눈발처럼 허연 소금의 뿌리가 드러나고

모든 추억은 소금창고에 침묵으로 쌓여 있다

그가 물려준 짜디짠 이 목숨,

누군가의 가슴에 스며들어가

쉬 무르거나 부패하지 않도록

마침맞은 간이 되어주라는,

형체가 녹아 없어져도 남은 짠맛으로

부단히 길을 열어가라는

얼얼하게 녹아 흐르는 말씀을 듣는 밤.

 

 


 

 

권순자 시인 / 사랑에 대한 짤막한 질문

 

 

형사님, 제 손을 보세요

제 손가락에는 지문이 없답니다

파출부로 나날이 남의 집 살림을 하고

식당 허드렛일을 하며 보낸 많은 시간들이

제 지문을 자갈처럼 훑고 지나갔지요

닳아버린 지문, 닳아버린 제 청춘에

단칸집 살림이 흔들거리더니

제 남편이 실직까지 해버렸네요

구인센터를 돌림방처럼 돌지만 늘 빈손이라서

제 허기진 몸에 신열이 올라

그만 먹을 것을 도둑질했네요

3개월 된 아이 울음이 환청으로 들려 그만

애기 분유를 훔쳤네요

제 지문이 없으니 어디에다 무엇으로 인주를 묻혀

제 죄를 찍을까요

눈물 닳은 싸늘한 거리 어디에

제 인생지문을 찍을까요

 

<시인정신> 2004년 봄호

 

 


 

권순자 시인

1958년 경북 경주에서 출생. 경북대학교 사범대학 영어교육학과와 국민대학교 교육대학원 영어교육학과 졸업. 2003년 《심상》신인상으로 등단. 시집으로 『우목횟집』(시평, 2009)과 『검은 늪』(종려나무, 2010) 이 있음. 현재 시인통신 동인, 포항문학회원, 한국시인협회회원, 한국작가회의회원으로 활동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