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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순자 시인 / 소금
아버지 입원 중이시다 다 떠나간 염전에서 끝까지 바다를 일구시더니 이제 소금기만 남아 누워 계시다 단단하고 올곧으시던 몸 용해되어 이젠 형체조차 알아볼 수 없다 그가 흘린 땀, 그 소금이 내 온몸 혈관을 타고 흐른다 그가 지고 나르시던 소금의 무게가 죽음의 무게로 흔들릴 때마다 내 늑골에서도 죄스런 소금 알갱이가 맺혔다 내가 허우적거릴 때마다 잡아주시던 손 흰 꽃가루 묻어나던 그 손이 곁에 있어도 마냥 그리워지는 날 아버지의 머리에서는 눈발처럼 허연 소금의 뿌리가 드러나고 모든 추억은 소금창고에 침묵으로 쌓여 있다 그가 물려준 짜디짠 이 목숨, 누군가의 가슴에 스며들어가 쉬 무르거나 부패하지 않도록 마침맞은 간이 되어주라는, 형체가 녹아 없어져도 남은 짠맛으로 부단히 길을 열어가라는 얼얼하게 녹아 흐르는 말씀을 듣는 밤.
권순자 시인 / 사랑에 대한 짤막한 질문
형사님, 제 손을 보세요 제 손가락에는 지문이 없답니다 파출부로 나날이 남의 집 살림을 하고 식당 허드렛일을 하며 보낸 많은 시간들이 제 지문을 자갈처럼 훑고 지나갔지요 닳아버린 지문, 닳아버린 제 청춘에 단칸집 살림이 흔들거리더니 제 남편이 실직까지 해버렸네요 구인센터를 돌림방처럼 돌지만 늘 빈손이라서 제 허기진 몸에 신열이 올라 그만 먹을 것을 도둑질했네요 3개월 된 아이 울음이 환청으로 들려 그만 애기 분유를 훔쳤네요 제 지문이 없으니 어디에다 무엇으로 인주를 묻혀 제 죄를 찍을까요 눈물 닳은 싸늘한 거리 어디에 제 인생지문을 찍을까요
<시인정신> 2004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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