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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주 시인 / 목줄에 대하여
내 목에 단단히 조여진 둥근 목둘레가 붉다 고통은 슬픔을 이기지 못했다 대문을 열 수 없는 식물처럼 달빛에 흔들리는 거미줄을 잡고 겨우, 줄의 길이만큼 떠났다 돌아오는 자유에 대하여 절뚝거리는 질주에 대하여 둥글게 몸을 뻗어 등뼈는 축축한 잠을 나이테 위에 그리고 있다
김선주 시인 / 사진 속 반란
사슬에 묶여 버둥대는 순간 후다닥 뛰어나오는데 해맑은 표정이 도화지에 시너를 뿌리는 동심을 포착하라
나는 응급조치가 필요하단 말이야 타래를 풀어야 하는데 거기 누구 없나요
메아리 없는 절규는 까마귀밥이 되었지
암전된 시간 속 아버지는 너에게 모든 걸 남겨주었어 갇혀있던 순간 나는 멋지게 당한거야
다 가진 아이와 가난한 이단아가 한 컷에 나란히 손을 잡는 사슬 속 발효된 역광이 저녁놀을 삼키고 있어
김선주 시인 / 곰국을 끓이다
밤새 찜통을 빠져 나온 꿈의 잔해가 하얀 뼈마디를 드러낸다 초식의 안쪽에서 솎아낸 늑골사이로 흔들리는 억새꽃
나는 이제 먼 들판을 노래하지 않는다 식구들의 일용할 양식을 그릇에 담자 모락모락 피어나는 김 뜨거움이 차가움과 엉기는 실루엣 누구이던가, 이 밤 엷은 막 뒤에서 나를 지켜보는 텅 빈 눈동자
하얀 김은 커다란 흰자위가 되어 나를 삼키고 나는 그의 눈 속을 떠다니는 미립자 가늠할 수 없는 안개 속 지나간 날들이 꾸역꾸역 소화된다 바깥은 내가 모르는 시간 속에서 때론 비정하게 성장의 문턱을 가로막고 의문 속으로 사라져간다
다 끓고 사그라지던 소용돌이가 내 안의 강물 속으로 슬며시 꼬리를 치켜드는 동안 끓일수록 졸아드는 국물 마지막 남은 한 사발을 식탁에 올리는 순간 지독한 초식의 생을 통과하는 현실의 내가 손을 내민다
김선주 시인 / 도회의 이도 공간
열려진 문틈으로 세상을 구경하다가 나보다 더 작은 먼지에게 들켰다
상처가 번지는 속도감을 감당하지 못해서 기둥 뒤 서성대는 작은 별들 나와 마주 앉은 낯선 이름을 낯익은 이름으로 익히는 법 가르치고 있다
출렁대는 시간이 달아나는 창문 밖 미처 영글지 못한 별빛이 건조한 소음과 바람에 엉켜 무심코 지나는 자동차 바퀴에 깔린다
아무것도 통과 시키지 못한 시간들 너절한 책상아래 파지처럼 널리고 보도블록 잡풀이 힘겨운 몸짓으로 이른 햇살을 밀어내는 소리
또각또각 굽 높은 구두가 맨살에 고랑을 내는 동안 발바닥에서 시작된 통증은 바닷게처럼 옆으로 걷다가 각질 가득 번지는 건기에 들어선다
김선주 시인 / 곰국을 끓이다2
쟁반 위에서 뼈들의 반란이 시작되었다
튕겨져 나간 흰 뼈 소리 없이 마당에 나뒹굴고 검은 고양이 한 마리 다가와 남아있던 살점을 바른다
뼈들이 웅성거리며 유영한다 부딪히던 뼈들이 일시 정지하자 주방은 열기로 가득하다 살아있는 건 이렇게 뜨거운 것인가 그렇다, 살아있는 건 뜨거움의 순간을 갖는다
목젖을 타고 내려가는 하얀 물들의 수런거림 뜨거움의 순간은 길면서도 짧다 숭숭 뚫린 뼛속으로 바람이 스며든다 살아있는 건 리모컨을 누르고 다시 세상 밖의 풍경을 재생하는 것이다
괄호 속에 갇혀있던 삶의 몸짓은 다시 괄호 밖으로 떠날 것인가 남을 것인가 스스로의 저울에 무게를 달고 있다 쉬잇, 우리가 기다리는 내일이 조심조심 다가오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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