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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춘근 시인 / 지뢰꽃
월하리를 지나 대마리 가는 길 철조망 지뢰밭에서는 가을꽃이 피고 있다
지천으로 흔한 지뢰를 지긋이 밟고 제 이념에 맞는 얼굴로 피고 지는 이름 없는 꽃
꺾으면 발밑에 뇌관이 일시에 터져 화약 냄새를 풍길 것 같은 꽃들
저 꽃의 씨앗들은 어떤 지뢰 위에서 뿌리내리고 가시철망에 찢긴 가슴으로 꽃을 피워야 하는 걸까
흘깃 스쳐 가는 병사들 몸에서도 꽃 냄새가 난다
정춘근 시인 / 황해
곽산과 초도 중간에 이르자 서서히 들물이 차오른다
예정대로라면 초도 갓차이 갔어야 하는데 바쎄 물이 드는 시간인데도 중간 밖에 건너지 못했다
망꼬리*에 부대기 닐쿠던 인민군 서이 무차부 할랑 터럼 더 이상 못 가겠다 곽산으로 돌아가겠다
아바니가 말길 새도 없이 한만둥 돌아가는 사람 서이
어서구레한 달빛 아래 점점 밀려드는 들믈 곽산으로 향하던 군인들 검은 수평선에서 잿바둠 하다가 이내 수면 아래로 쟁긴다
망꼬리: 맨 끝, 부대기 닐꾸던:화전을 일구던, 무차부 할랑 터럼: 일정한 주관 없이 경망한 남자 처럼, 어서구레한: 어두워서 물체가 희미하게 보임, 잿바둠: 뒤로 자빠질 자세를 취하다
정춘근 시인 / 막걸리 파티
막걸리를 마신다 근심을 담아 술잔을 부딪친다 착공식 손님들이 가져온 돼지고기 이백 근을 안주삼아 막걸리 스무 말을 다마신다 술을 못 마시는 사람도 술고래도 오늘은 허리끈을 풀어 놓고 내일부터 시작되는 개간에 지뢰를 밟아 두 다리가 잘려 나가고 숨통이 끊어질 것 같은 살 떨리는 공포를 잊기 위해 유행가에 젓가락 장단을 맞춰가며 마시고 또 마신다 밤을 새워 마시다가 소변을 핑계 삼아 텐트 밖을 나서 남쪽 하늘을 보면 걱정으로 지샐 여편네와 철 모르는 자식들 초롱초롱한 눈망울이 아픈 별처럼 내려와 눈시울을 젖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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