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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정춘근 시인 / 지뢰꽃 외 2편

by 파스칼바이런 2021. 9. 5.

정춘근 시인 / 지뢰꽃

 

 

월하리를 지나

대마리 가는 길

철조망 지뢰밭에서는

가을꽃이 피고 있다

 

지천으로 흔한

지뢰를 지긋이 밟고

제 이념에 맞는 얼굴로 피고 지는

이름 없는 꽃

 

꺾으면 발밑에

뇌관이 일시에 터져

화약 냄새를 풍길 것 같은 꽃들

 

저 꽃의 씨앗들은

어떤 지뢰 위에서

뿌리내리고

가시철망에 찢긴 가슴으로

꽃을 피워야 하는 걸까

 

흘깃 스쳐 가는

병사들 몸에서도

꽃 냄새가 난다

 

 


 

 

정춘근 시인 / 황해

 

 

곽산과 초도 중간에 이르자

서서히 들물이 차오른다

 

예정대로라면

초도 갓차이 갔어야 하는데

바쎄 물이 드는 시간인데도

중간 밖에 건너지 못했다

 

망꼬리*에 부대기 닐쿠던 인민군 서이

무차부 할랑 터럼

더 이상 못 가겠다

곽산으로 돌아가겠다

 

아바니가 말길 새도 없이

한만둥 돌아가는 사람 서이

 

어서구레한 달빛 아래

점점 밀려드는 들믈

곽산으로 향하던 군인들

검은 수평선에서 잿바둠 하다가

이내 수면 아래로 쟁긴다

 

망꼬리: 맨 끝, 부대기 닐꾸던:화전을 일구던,

무차부 할랑 터럼: 일정한 주관 없이 경망한 남자 처럼,

어서구레한: 어두워서 물체가 희미하게 보임,

잿바둠: 뒤로 자빠질 자세를 취하다

 

 


 

 

정춘근 시인 / 막걸리 파티

 

 

막걸리를 마신다

근심을 담아 술잔을 부딪친다

착공식 손님들이 가져온 돼지고기

이백 근을 안주삼아 막걸리 스무 말을 다마신다

술을 못 마시는 사람도

술고래도 오늘은

허리끈을 풀어 놓고

내일부터 시작되는 개간에

지뢰를 밟아 두 다리가 잘려 나가고

숨통이 끊어질 것 같은

살 떨리는 공포를  잊기 위해 유행가에 젓가락 장단을 맞춰가며

마시고 또 마신다

밤을 새워 마시다가

소변을 핑계 삼아

텐트 밖을 나서

남쪽 하늘을 보면

걱정으로 지샐

여편네와 철 모르는 자식들 초롱초롱한 눈망울이 아픈 별처럼 내려와

눈시울을 젖게 한다

 

 


 

정춘근 시인

1960년 강원도 철원 출생. 정춘근 시인은 1999년 <실천문학> 봄호를 통해 등단한 이래 <지뢰꽃> <수류탄 고기잡이> <북한 사투리 장시 황해> 등 3권의 시집을 발간. 민족문학작가협회 강원지부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