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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민숙 시인 / 솟대의 꿈
백산에 올라 삭정이 주워 비 오는 날 아버지가 대청마루 걸터앉아 솟대를 만드신다. 조선낫으로 나무껍질 벗겨 가지 끝에다 종이배 닮은 나무둥치 깎아 올려놓고 어린 나를 보며 씩 웃으신다. 아버지는 저 아슬아슬한 나뭇가지 위에 왜 배를 매달아 놓으신 걸까 동진강 물길 따라 용왕님 만나고 싶은 걸까 그러다 송곳으로 나무둥치에 구멍을 뚫으신다. 돛대를 세우는가 싶더니 새 주둥이를 끼워 넣으신다. 아버지의 꿈은 바다가 아니라 하늘이었나 보다 몰아쳐 오는 외세의 거친 폭풍 속에서 갑오년 동학농민의 외침을 듣고 있나 보다 길게 목을 뺀 새가 되어.
강민숙 시인 / 못
못 하나 뽑는 일이 얼마나 아픈 일인가를 못을 뽑아본 사람은 안다.
장도리와 망치 불끈 들고 못의 목을 겨누어 뽑아본 사람은 못의 흔적 그 휑한 자리를 안다.
누구도 채울 수 없는 못의 자리 사람이 못이었음을 안다.
언제가 한번은 뽑히고 말 그 자리에 나는 오늘 내 삶의 외투를 건다.
강민숙 시인 / 흙
땅에다 줄 하나 쭉 그었다 선 위에 눈이 내린다 누군가 눈사람 만들어 모자를 씌워 주고 간다 ‘흐’ 사람 눈에 돋은 새싹들 ‘ㄹ’자로 웅크리고 그 곁에 ‘ㄱ’자로 꺾인 목소리 눈이 녹으면 저 새싹들 북북 돋아나겠지 지평선 파랗게 물들이며.
강민숙 시인 / 이 또한 지나가리라
세상에 상처 없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요 부딪치거나 부딪치지 않아도 상처는 생긴 답니다 물에도 상처가 있어요 돌부리에 넘어지고 긁힌 상처 물은 그냥 부둥켜안고 가지요 그것이 살아가는 일이고 삶이라는 걸 걸어 가본 물은 다 알고 있지요 어쩌다 여울 만나면 소리치기도 하고 때론 안단테로 읇조리며 물은 그렇게 흘러가고 있어요 되돌아 갈 수 없는 시간을 넘어 자기 상처, 자기가 씻으며 물은 물 따라 가고 있어요 가는 길 묻지도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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