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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강민숙 시인 / 솟대의 꿈 외 3편

by 파스칼바이런 2021. 9. 5.

강민숙 시인 / 솟대의 꿈

 

 

 백산에 올라 삭정이 주워

 비 오는 날 아버지가

 대청마루 걸터앉아 솟대를 만드신다.

 조선낫으로 나무껍질 벗겨

 가지 끝에다 종이배 닮은

 나무둥치 깎아 올려놓고

 어린 나를 보며 씩 웃으신다.

 아버지는 저 아슬아슬한 나뭇가지 위에

 왜 배를 매달아 놓으신 걸까

 동진강 물길 따라

 용왕님 만나고 싶은 걸까

 그러다 송곳으로 나무둥치에

 구멍을 뚫으신다.

 돛대를 세우는가 싶더니

 새 주둥이를 끼워 넣으신다.

 아버지의 꿈은

 바다가 아니라 하늘이었나 보다

 몰아쳐 오는 외세의 거친 폭풍 속에서

 갑오년 동학농민의

 외침을 듣고 있나 보다

 길게 목을 뺀 새가 되어.

 

 


 

 

강민숙 시인 / 못

 

 

못 하나 뽑는 일이

얼마나 아픈 일인가를

못을 뽑아본 사람은 안다.

 

장도리와 망치

불끈 들고

못의 목을

겨누어 뽑아본 사람은

못의 흔적

그 휑한 자리를 안다.

 

누구도 채울 수 없는

못의 자리

사람이 못이었음을 안다.

 

언제가 한번은

뽑히고 말

그 자리에

나는 오늘

내 삶의 외투를 건다.

 

 


 

 

강민숙 시인 / 흙

 

 

땅에다 줄 하나 쭉 그었다

선 위에 눈이 내린다

누군가

눈사람 만들어

모자를 씌워 주고 간다

‘흐’

사람 눈에 돋은

새싹들

‘ㄹ’자로 웅크리고

그 곁에 ‘ㄱ’자로

꺾인 목소리

눈이 녹으면

저 새싹들 북북 돋아나겠지

지평선 파랗게 물들이며.

 

 


 

 

강민숙 시인 / 이 또한 지나가리라

 

 

세상에 상처 없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요

부딪치거나 부딪치지 않아도

상처는 생긴 답니다

물에도 상처가 있어요

돌부리에 넘어지고 긁힌 상처

물은 그냥 부둥켜안고 가지요

그것이 살아가는 일이고

삶이라는 걸

걸어 가본 물은 다 알고 있지요

어쩌다 여울 만나면

소리치기도 하고

때론 안단테로 읇조리며

물은 그렇게 흘러가고 있어요

되돌아 갈 수 없는 시간을 넘어

자기 상처, 자기가 씻으며

물은 물 따라 가고 있어요

가는 길 묻지도 않고.

 

 


 

강민숙 시인

전북 부안 출생. 동국대 문예창작학과 석사, 명지대 문예창작학과 문학박사. 1991년 등단해 아동문학상과 허난설헌문학상, 매월당문학상, 서울문학상, 법무부장관상 등을 수상했다. 시집 <노을 속에 당신을 묻고> <그대 바다에 섬으로 떠서>, <꽃은 바람을 탓하지 않는다>, <둥지는 없다> 외 10여권의 저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