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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은숙 시인 / 봄날의 리포트
-몇 겹 바람의 뭉치
몇 겹 바람의 뭉치가 흔들리는 저 분홍의 겹은 바람의 시료(試料)다. 꽃잎을 따라 나오는 분홍은 얇은 혐의다. 여기저기 옮겨 다니는 봄의 단추다. 꽃이 핀 나무는 실험용 비커, 흔들면 반응하는 물질이다. 연기도 나지 않는 화재(火災)다.
-노란 온도
마을 입구 튀밥 기계가 임시 설치되었다. 몇 개의 온도를 지나 노란 온도에서 뒤집힌 울화(鬱火)가 제 가슴을 치듯 흔들린다. 학계에 보고되지 않은 열기가 목질 속에 들어 있다. 섭씨의 타이머를 단 노란 산수유가 핀다. 만약 저 온도가 성화라면, 곧 식은 탄식이 초록의 열매로 자잘할 것이다.
-성급한 눈
털도 없이 눈뜨는 앙상한 버들가지들, 물소리를 먹고 자란 것들이 가지마다 실눈을 뜬다. 부리에서 받아먹은 기억은 다시 부리가 되고, 이른 봄을 덥히는 저 솜털들은 다시 솜털이 된다. 지금은 모두 입을 벌리고 푸른 잎의 날개를 기다린다. 근처의 꽃잎들은 이소(離巢)를 준비하고 있다.
-검은 수심
마당을 찾아다니는 화종(花種)이 있다. 검은 수심에 파문도 없이 떨어진다. 흘러가지도 않는 익사체, 나는 마당에서 오래 허우적거린 적 있었다. 미닫이문을 열고 싶어 하던 소리가 있었고 방으로 들어오고 싶어 하던 겹겹의 날씨가 있었다. 나는 방을 떠돌았고 목련은 봄을 떠돌았다. 떠올려보니 흰색의 걸음은 그때 다 디뎌서 지금은 없다.
월간 『모던포엠』 2020년 2월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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