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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장충열 시인 / 바오밥나무 외 5편

by 파스칼바이런 2021. 9. 5.

장충열 시인 / 바오밥나무

 

 

 때로, 세상을 거꾸로도 볼 일이다

 바로 쳐다본다고

 다 똑바로 보이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세상 속내는 요지경이기도 하고

 허무와 실패는 숨어 있기 마련이다

 축복 받아야 기껏 백년사는 인간이

 천년의 지혜 물으면,

 말 대신 제 몸을 가리켜

 사려 깊이 뿌리 내리라 한다

 어린왕자의 꿈으로 피는 커다란 별꽃 매달고

 뿌리 공중으로, 섬세한 촉수 뻗어

 자신의 하늘 바라보게 하는 나무

 나무별에서 온 바오밥은 석양을 물들며

 시끄러운 세상을 향해 말없이 말한다

 

 때로, 세상을 거꾸로도 볼 일이라고.

 

 


 

 

장충열 시인 / 거미줄

 

 

하얀 점 하나를 찍는 것은

벗어날 수 없는 연결선의 시작이다

그대가 바로 옆에 또하나의 점을 찍는 것은

심오한 여녈 고리를 만들며

직선으로 달려가는 그리움에 날개를 다는 것이다

 

직선과 사선으로 만나는

선명한 일치 속에

점은 선을 잇고

선은 미래를 이으며

여백없이 채워가는 둘만의 위안이다

 

때로는 흔들리고 찢기기도 하지만

새벽이슬이 맑은 영혼처럼 빛나는 거미줄

 

그대와 나는

서로 이어가며 완성해가는

떨어질 수 없는 하나다

 

 


 

 

장충열 시인 / 아지랑이

 

 

봄볕에 배 내밀고 서 있는 항아리들이 있어지요.

유년의 꿈은 빈 항아리 채우듯 영글었고

생의 울림이 무엇인가 알게 되었지요.

봄 되면 먼저 떠오르는 흑백의 어머니와 장독대

그곳으로 한없이 달려가는 내가 있습니다

벚꽃이 눈처럼 덮히면 바람이 치우기전까지

꽃잎을 감상하셨던 물기어린 눈동자에 포개지던

어머니의 젊은 날

지금, 회상의 꽃잎 흩어지고 있어요

떨어지는 것은 모두 슬픔을 달았을까요

생명있는 것들은 사라지기에 귀하지만

마음에서 떠나지 않으면 사라진 것이 아니지요

흩날리는 그 시절 따라 멀리 산봉우리까지 달립니다

언젠가는 내 아이들도 이렇게 나를 추억하겠지요

산다는 것은 아스라한 그리움의 연속인 것을

 

 


 

 

장충열 시인 / 벚꽃 지던 날

 

 

꽃잎 흩날릴 때면 힘없는 엄마 목소리 들린다

한참 때 많이 먹어라 애처로이 바라보시던 눈빛

 

무엇이 그리도 급하셨나요

뼈저린 사랑 무너져 내리던 날

하늘도 울어 흩뿌리는 빗속에 벚꽃잎 날렸었다

진해 벚꽃 구경 가자고 블라우스도 한 벌 맞춰놓고는

작은 효심도 받지 못하고 엄마는 봄 언덕에 누우셨다

 

엄마는 아플 줄도 모르는 줄 알았다

엄마는 정말 씩씩한 줄만 알았다

언제까지나 우리 지켜주실 줄만 알았다

 

철없는 자식들의 손 어떻게 놓을 수 있었는지

 

엄마 가신 지 수십 년

이제 닮아가는 나이 지났건만

흑백으로 어리는 애절한 모습

여전히 그날의 꽃잎 흩날린다

 

어디서 날아왔는지

못다 준 자식사랑 안타까움 일어

흰 나비 보내셨나

뜨거운 눈물 속 어른거리는

엄마의 하얀 치맛자락

 

 


 

 

장충열 시인 / 입속의 별똥별

 

 

태양이 어루만진 짙푸른 표면 따라

‘쩍’ 갈라진 빨간 우주 속으로 들어 간다

흰 살 붉은 살 되기까지

흰 점 검은 점 되기까지

버리고 싶은 기억들 여기저기 까맣게 박혀 있다

견뎌야만 했던 무채색 통증은 얼마나 많았던가

시간을 되돌려 지울 수 있다면

생의 절반은 버려야 하리라

튕기듯 입속에서 떨어지는 아린 기억들

입속을 도는 향긋한 과즙이 목에 감긴다

가시 헤치고 살아온 날들의 인내는

어떤 향기 피워내고 있는가

답 없는 물음에 생각만 저문다.

 

 


 

 

장충열 시인 / 햇살 한 웅큼

 

 

유화인가 수채화인가

채색 속 제일 큰 신의 화판(畵板)

명랑한 눈부심이 봄을 칠했다

 

절로 흥겨운 시(時) 밭에

수액 끌어올려 햇살도 기절시키고

걸리적 거리는 것 다 떨쳐버린

한바탕 어우러진 춤판이다

 

이토록 노란 땅 위에서

밝게 마음 헹구며

사랑도, 이별도 접어두고

무조건 달리는 설렘이다

고비 한 자락 넘기면서

위안으로 찾아드는 잊지 못할 단맛이다

 

하늘만 바라보던 닿지 못하는 빛깔

멈출 수 없는 환상

청맹과니 번쩍 눈 뜨듯이

탄성의 날개 파도 타는 나비 떼

그 끝은 보이지 않는다

쉼없이 밀려드는 노란 꽃보라의 현기증

 

 


 

장충열 시인(낭송가)

1996년 <월간문학> 작품발표로 시작, 한국문인협회 낭송문화위원장, 국제PEN한국본부 문화예술위원. 한국문협 평생교육원, 대학, 문화원, 문화단체 감성스피치 강의. 전국시낭송대회 심사위원, 한국낭송문예협회장, 미네르바, 시산맥 회원. 시집-『연시, 그 절정』 『미처 봉하지 못한 밀서』 외 다수. 수상-제3회 한국문학인상, 서초문학상. 제1회 한국작가 낭송문학대상, 대한민국브랜드대상(낭송부문) 제21회 세종 명인문화대상 외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