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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이혜선 시인 / 그 참새들은 어디로 갔을까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1. 9. 5.

이혜선 시인 / 그 참새들은 어디로 갔을까

 

 

양지바른 초가집 추녀 끝에는 참새가 살았다

나락타작이 끝나면 마당엔 곡식 낟가리가 쌓이고 바깥마당엔 짚동이 높이 쌓였다

숨기놀이 꼬마들은 보름달의 눈을 가려놓고 짚동 사이에 숨었다

 

새끼 꼬기 가마니 짜기가 시들해진 겨울밤이면 동네오빠들은 참새잡이에 나섰다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지붕 추녀 속에 살그머니 손을 집어넣어 잠든 참새를 잡아내었다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한 명은 사다리를 잡아주고 한 명은 참새를 잡고 또 다른 사람은 참새를 받아 통 속에 담았다 어떤 날은 손끝에 물컹하는 게 잡혀서 깜짝 놀라 사다리에서 떨어졌다 먼저 와서 참새 잡아먹는 뱀을 만졌다고 했다

 

용수네 집에 모여서 모닥불을 피우고 파닥이는 참새를 구울 때쯤 나는

슬그머니 뒷줄로 빠져서 어두운 골목길로 혼자 돌아왔다

포근한 잠자리에서 억울하게 잡혀 나와 아작아작 씹히는

참새의 영혼이 내게 옮겨 붙을까봐

그 오빠들 눈 마주칠까봐

겨울 내내

동네 바깥 길로 피해 다녔다

 

 


 

 

이혜선 시인 / 모두 다 부활하여 오신다

 

 

사랑하는 마음이 그득하니 지극하면 언제 어느 곳에서고 사랑하는 사람을 볼 수 있고 만날 수 있다. 설령 사랑하는 이가 꽃상여를 타고 아주 멀리멀리 떠나버렸다 할지라도 지극한 사랑은 유계幽界에서도 그 사랑을 불러올 수 있는 것이리라.

 

얼마나 보고 싶고 그리웠으면 밤이면 밤마다 잠 못 이루고 전전반측 뜬 눈으로 지새우다가 새벽닭이 울 때면 더욱 보고 싶어 가신님을 소리쳐 불러 보는 것이랴.

 

그 지극, 지순한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 마침내 부활하여 돌아오는 사랑, 그것도 단 한 사람으로서가 아니라 ‘종로 네거리에’ 조잘대며 오는 아이들의 눈망울 속에, 핏대에, 가슴 속에 들어앉아 모두 다 내 사랑으로 다가오고 있는 기적이 일어나는 것이다.

 

고등학교 때 멋쟁이 시인이신 작문 선생님이 그윽한 목소리로 읊어 주시던, 1941년에 출간된 미당의 첫 시집 『화사집花蛇集』맨 마지막 페이지에 실려 있는 이 시를 지금도 나는 즐겨 낭송한다. 시인으로 추천하여 문단에 내보내시며 ‘한국에서만 좋은 시인이 되지 말고’ 세계적으로 좋은 시인이 되라고, 혜초(慧超, 蕙草)보다 먼저 있으라고, 혜란蕙蘭보다 더 향기롭고 고결하라고, 본명인 혜선惠仙의 소리는 그대로 살리고 뜻만 다른 글자로 혜선蕙先이라는 호를 지어 주신 미당未堂 스승을 생각하며 이 시를 읊으면 어느새 그 분이 내 앞 가득 나타나서 빙그레 미소 지으신다. 그 시선詩仙의 미소를! 내 가까이 있는 모든 분이 다 스승님이고 부처님이고 하나님이시다. 모두 다 부활하여 오신다.

 

 


 

이혜선(李惠仙) 시인

1950년 경남 함안에서 출생. 1981년월간 『시문학』 천료로 등단. 동국대학교 국문과, 세종대학교 대학원 졸업(문학박사). 저서로는 시집으로 『神 한 마리』,『나보다 더 나를 잘 아시는 이』,『바람 한 분 만나시거든』, 『새소리 택배』 와 평론집『문학과 꿈의 변용』,『이혜선의 명시산책』, 영역시집(공저)『 New Sprouts within You』가 있음. 한국 현대시인상, 동국문학상, 문학비평가협회상(평론부문), 선사문학상, 윤동주문학상,등을 수상하고 동국대 외래 교수, 세종대 강사, 한국현대시인협회 부이사장 등을 역임. 현재 동국문학인회 회장. 한국 문인협회와 국제 펜 한국본부 이사. <세계일보>에 <이혜선의 한 주의 시>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