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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호 시인 / 녹슨 못
녹슨 못 하나 하나 펴서 박는 목공의 손놀림 새 못보다 녹슨 못이 좋다는 듯 모아 놓은 공구함의 녹슨 못들 세월의 흐름 속에 생기는 녹 물 먹은 존재로서의 녹 나무와 나무를 잡고 놓아주지 않는 힘이 녹인가
녹슨 못 하나 찍어 논 흑백 사진 삶의 여정을 잘 소화한 인간의 모습이다 성한 곳 없이 부식된 못 하나에서 느끼는 카리스마
신의 은총이 내린 인간의 성숙함 녹슨 못
박진호 시인 / 기연(奇緣)
꽃술에 나비 찾듯 해안가 바위의 아늑함은 용궁에서 올라온 연꽃일까
올해도 8월의 매미 소리에 따라 떠나는 피서 새로운 인연 위해
미지의 세계 마도로스의 바람처럼 여름의 신기루 찾는다
박진호 시인 / 음악
바람의 끝에는 붓이 있어 그림의 향이 울린다 비워내지 못하는 속물의 역한 향을 씻어 주듯이 차분한 한 마디 흐름마다 재스민 향이 배어 있다 재스민 향이 그려가는 자국에 흥겨움이 있다 흥겨움의 어깨춤 뒤에 오는 완성된 그림자는 영혼 안에 명품으로 가득 찬 충만감으로 보인다 어제오늘의 그 모든 순간 속 만들어가야 할 것 잊어버린 추억의 안타까움마저 한 선율이 되어 마음속을 채워주는 뿌듯한 안정감으로 이 순간 해야 할 내일의 희망이 들려온다 바람의 오현 위의 콩나물들을 튕겨 보다 보면 채움과 비움의 울림으로 영혼은 배부르다 소중한 순간의 간절함을 이해하는 듯이
박진호 시인 / 무엇일까 3
늘 열심히 살아도 모르는 모습의 나 아는 진리는 경계선 모르는 오답 이용하고 이용당하는 먹이 사슬 속 머리를 따르던 결과 후회만 느낄 뿐 마음으로 물러설 수 없는 링 안에서 비켜서서 허공만 물어뜯습니다 나 아닌 우린 서로의 피해자라고 우기고 도망치고 싶지만 도망갈 구멍 없는 질그릇 안이었습니다 우리가 우리를 아는 진실도 거짓의 파편 내가 나에게서 도망하기를 시도했습니다 그 불신의 탈출구가 명상 또는 기도라 하네요 그 기도는 효과가 있는 것 같아 이불 속에 머리 박고 마음속 이야기를 하는데 지나가던 개가 듣고 짖으니 해명할 필요가 없더군요 왜 나를 축복할 시간이 없나요 왜 언제나 선 밖으로 밀려나나요 늘 그렇게 그 자리에서 놀고 있지요
박진호 시인 / 무엇일까 5
욕조에 몸을 담그고 지난 삶 떠올리면 가위에 눌려 허덕여 온 그늘이 많았다 수영장에 가면 왜 그리 뜨기 어려운지 물 먹지 않으려 허덕이던 시간들 삶이 어려울수록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 간절할수록 찾게 되는 신 삶의 그늘이 선한 마음이어야 한다는 죄의 그늘에서 벗어나는 은총 ‘선과 악’ 답하는 자 삶의 문이 열린다 개인이 아닌 모두의 문제를 풀어주는 문제 어둠의 그늘에 들어간 자만이 풀 수 있는 기도 삶이 녹록지 않다는 건 심판이 있기 때문 어두운 미래에도 희망이 있는 건 하늘 위 햇살과도 같다
박진호 시인 / 찰나의 미
날아오르는 비둘기의 날개 춤 위에 구름 사이를 뚫고 내려온 햇살 웃음
꽃무리 속 섞여 있는 나비의 꿈 파도의 물보라 벽을 타고 가는 서핑의 멋
처마 끝 낙숫물이 항아리 안의 벽을 울리는 소리 심금의 줄을 연주하는 빗방울의 한 획
오고 가는 마음의 한 술 건배 어숭그러한 뚝배기 한 사발
박진호 시인 / 깨달음覺
혼돈에서 깨어나는 구도의 초점을 잡는
언제나 그대로인 일생의 초점
영혼에 투사된 그림 완성되는 그림엽서
심판 뒤의 초대장 선명한 엽서
박진호 시인 / 세월
지나가는 시간에도 지문처럼 의미가 묻어 있다
기계처럼 사는 것도 소용돌이치는 시각의 좌표 위에
부표처럼 떠 있기에 느끼는 공허함이다
순간의 맛을 보려 해도 호수 위 빗방울처럼 무심한 세상 앞에 퍼지는 허상의 동심원이다
박진호 시인 / 비
슬픔을 품고 먹구름을 몰고 오는 바람결
빗방울 하나하나 맺히는 아픔 느끼며
나뭇가지의 잎도 힘껏 흐른다 하늘을 우러러 이겨내야 할 숙명처럼 빗 뭉치의 타격은 내 안의 잠재된 응어리를 푼다
이 생의 전생에 씻어 낼 수 없을 만큼 아픈 상처들을 잎사귀는 빗방울에 내어 놓는다 하늘과 땅이 화해할 수 없는 비밀을 오늘 비로소 타협하려나 보다 빗방울을 흘러 보내며 내 비밀 또한 흐른다 수천 년의 한이 흐른다 수억 년의 한이 흐른다 내 속의 아픔이 시원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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