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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경 시인 / 짧은 안부
가난한 동네에 십자가가 많은 이유는 구원받을 죄인이 많기 때문인가
사글셋방도 부러워 낡은 문패에 눈길 머무는 사람들 옥탑 꼭대기 교회당 종소리는 구원의 안부가 된 지 오래다
고층 아파트 그늘 속에서도 수직의 벽을 견고하게 걸어서 올라가는 그것만이 생존의 길이라 믿어온 담쟁이넝쿨처럼
철야 작업이 끝나고 지하실 작업장을 빠져나온 이주노동자 한 무리 문득, 누군가 건넨 소주 한 병과 과자 한 봉지에 퇴근길 안부가 환하다
김종경, 『기우뚱, 날다』, 실천문학사, 2017년. pp.49~50.
김종경 시인 / 불편한 안부
논두렁길 위에서 지하철 안 당신과 통화 중이다
왁자지껄한 개구리 소리가 핸드폰으로 뛰어들어 때늦은 안부를 묻는다 낯익은 3호선, 당신의 불편한 안부가 논두렁길 밖으로 빠져나온다
날마다 환승역 한두 개쯤 거쳐야 지상의 집으로 갈 수 있다고 당신은 말했다 종착역 신호음이 끊어지자 더 이상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사람들이 서둘러 지상의 계단을 빠져나갔고 나는 논두렁길 달빛역 위에 주저앉아 하염없이 울었다
김종경, 『기우뚱, 날다』, 실천문학사, 2017년. p.67.
김종경 시인 / 사막등대
별밤에도 불을 지펴 실크로드 순례자들에게 어둠 속 길을 안내하던 사막의 오아시스
가끔은 사형을 집행하던 절체절명의 전탑이었던
구원과 죽음의 등불이 동시에 타올랐던
사막에도 등대가 있다
김종경 시인 / 안개의 부음
안개주의보를 뚫고 도시의 경계를 몇 개쯤 지났을까
장례식장 가는 길목엔 방향 잃은 점멸등과 이정표들이 젖은 몸을 일으켜 일찌감치 귀가를 서둘렀고, 환경미화원들은 낙엽처럼 쌓여 가던 창백한 밤안개를 쓸다 말고 넋을 잃었다
머뭇거리다 혼자 떠난 문상길이다 산 자와 죽은 자의 뒤섞인 이름들을 떠올려보지만 기억나지 않았다 장례식장에 들어서자 낯선 눈빛들, 지친 조화들만 이름표를 매단 채 졸고 있고 낡은 구두 몇 켤레만 흩어져 술 취한 추억들에게 붙잡혀 있다
얼굴도 모르는 상주에게 문상을 하고 돌아가신 아버지 이름으로 쓴 조의금 봉투를 다시 한 번 확인하며 돌아섰다
앰뷸런스는 또 다른 부음을 찾아 안개주의보 속으로 달려가고
『기우뚱, 날다』 (실천문학사,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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