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시인과 시(현대)

김종경 시인 / 짧은 안부 외 3편

by 파스칼바이런 2021. 9. 7.

김종경 시인 / 짧은 안부

 

 

 가난한 동네에

 십자가가 많은 이유는

 구원받을 죄인이 많기 때문인가

 

 사글셋방도 부러워

 낡은 문패에 눈길 머무는 사람들

 옥탑 꼭대기 교회당 종소리는

 구원의 안부가 된 지 오래다

 

 고층 아파트 그늘 속에서도

 수직의 벽을 견고하게

 걸어서 올라가는

 그것만이 생존의 길이라 믿어온

 담쟁이넝쿨처럼

 

 철야 작업이 끝나고

 지하실 작업장을 빠져나온

 이주노동자 한 무리

 문득, 누군가 건넨

 소주 한 병과 과자 한 봉지에

 퇴근길 안부가 환하다

 

김종경, 『기우뚱, 날다』, 실천문학사, 2017년. pp.49~50.

 

 


 

 

김종경 시인 / 불편한 안부

 

 

논두렁길 위에서 지하철 안 당신과 통화 중이다

 

왁자지껄한 개구리 소리가 핸드폰으로 뛰어들어 때늦은 안부를 묻는다 낯익은 3호선, 당신의 불편한 안부가 논두렁길 밖으로 빠져나온다

 

날마다 환승역 한두 개쯤 거쳐야 지상의 집으로 갈 수 있다고 당신은 말했다 종착역 신호음이 끊어지자 더 이상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사람들이 서둘러 지상의 계단을 빠져나갔고 나는 논두렁길 달빛역 위에 주저앉아 하염없이 울었다

 

김종경, 『기우뚱, 날다』, 실천문학사, 2017년. p.67.

 

 


 

 

김종경 시인 / 사막등대

 

 

별밤에도 불을 지펴

실크로드 순례자들에게

어둠 속 길을 안내하던

사막의 오아시스

 

가끔은 사형을 집행하던

절체절명의 전탑이었던

 

구원과 죽음의 등불이

동시에 타올랐던

 

사막에도 등대가 있다

 

 


 

 

김종경 시인 / 안개의 부음

 

 

  안개주의보를 뚫고

  도시의 경계를 몇 개쯤 지났을까

 

  장례식장 가는 길목엔 방향 잃은 점멸등과 이정표들이

  젖은 몸을 일으켜 일찌감치 귀가를 서둘렀고,

  환경미화원들은 낙엽처럼 쌓여 가던 창백한 밤안개를

  쓸다 말고 넋을 잃었다

 

  머뭇거리다 혼자 떠난 문상길이다

  산 자와 죽은 자의 뒤섞인 이름들을 떠올려보지만

  기억나지 않았다

  장례식장에 들어서자 낯선 눈빛들,

  지친 조화들만 이름표를 매단 채 졸고 있고

  낡은 구두 몇 켤레만 흩어져

  술 취한 추억들에게 붙잡혀 있다

 

  얼굴도 모르는 상주에게 문상을 하고

  돌아가신 아버지 이름으로 쓴 조의금 봉투를 다시 한 번

  확인하며 돌아섰다

 

  앰뷸런스는 또 다른 부음을 찾아

  안개주의보 속으로 달려가고

 

『기우뚱, 날다』 (실천문학사, 2017)

 

 


 

김종경 시인(언론인)

1967년 경기도 용인에서 태어남. 단국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학 박사과정 수료. 2008년 계간 '불교문예' 등단 작품활동 시작, 시집『기우뚱, 날다』저서로 포토에세이 <독수리의 꿈이 있음. 용인신문발행인, 대표. 현재 한국작가회의 회원. 한국환경사진협회 초대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