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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김용락 시인 / 헌사(獻詞) 외 2편

by 파스칼바이런 2021. 9. 6.

김용락 시인 / 헌사(獻詞)

 

 

 대중가수 최백호 씨

 

 누군가 보내준 유튜브에

 최백호가 ‘봄날은 간다’를 부른다

 내가 이제껏 지상에서 본 것 중

 최고의 절창이다

 황홀하다

 폐부를 찌르고

 애간장이 녹는다는 표현의 의미를 실감한다

 

 나는 그렇게 인생의 깊이가 어린 얼굴을

 여태껏 본 적이 없다

 몇 십 번을 되돌려 노래를 감상하다가

 뒤늦게 그의 왼쪽 가슴에 꽂힌

 노란 세월호 표식을 보고

 나는 벼락에 맞은 것처럼 심장이 멎었다

 

 지상 최고의 헌사였다

 

  (2018. 10. 24.)

 

 


 

 

김용락 시인 / 조탑동에서 주워들은 시 같지 않은 시. 6

 

 

가만히 생각해보니

벌써 10년도 더 지난 일이다

[반달]의 윤석중 옹이 여든의 노구를 이끌고

새싹문학상을 주시겠다고

안동 조탑리 권정생 선생 댁을 방문했다

수녀님 몇 분과 함께,

두 평 좁은 방 안에서 상패와 상금을 권 선생께 전달하셨다

상패를 한동안 물끄러미 바라보시던

 

권 선생님 왈

 

"아이고 선생님요, 뭐 하려고 이 먼 데까지 오셨니껴?

 

우리 어른들이 어린이들을 위해 한 게

뭐 있다고 이런 상을 만들어

어른들끼리 주고 받니껴?

 

내사 이 상 안 받을라니더......"

 

윤석중 선생과 수녀님들은

한동안 아무 말 없이 앉아 있다가 서울로 되돌아갔다

 

다음날 이른 오전

안동시 일직면 우체국 소인이 찍힌 소포로

상패와 상금을 원래 주인에게 부쳤다

 

그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봉화서 농사짓는 정호경 신부님

"영감쟁이, 성질도 빌나다 상패는 돌려주더라도

상금은 우리끼리 나눠 쓰면 될 텐데......"

 

 


 

 

김용락 시인 / 논과 밭

 

 

아파트가 좁아 소장한 책 일부를

시골집 아래채에 갖다 놓으려 했다

한때 내 꿈은 어마어마한 장서가가 되는 것이었다

자다가 책에 깔려 죽어도 좋을 만큼

책상머리에 많은 책을 쌓아두고 싶었다

대학 때는 라면을 굶어가면서

하루 빨리 책 1만 권을 사 모으려고 했다

어떻게 보면 이 지긋지긋한 책 욕심이

공부나 세상에 대한 진지한 탐구심이나 열정이 아니라

사실은 내 무의식 깊은 곳에 있던

어떤 열등감의 표출이었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처음에는 책 구매에 순순히 동의하던 집사람도

언제쯤부터는 보지도 않을 책 제발 좀

그만 사 모으라고 핀잔을 주기 시작했다

드디어 이삿짐 트럭을 불러 포장이사를 시작했다

각이 잘 짜인 매끄러운 종이박스에다가

도서분류 번호와는 상관없이 우선 낡고 오래된 책부터 채워

작은 트럭에 잔득 싣고 시골집에 도착했다

큰 신작로 가에 포장 박스를 내려놓고

바퀴에 바람이 빠진 리어카로

몇 번 꺾어진 골목 안 쪽 옛 우거에

책을 실어 나르느라고 땀을 흘리고 있었다

구경 나온 동네 어르신 한 분이

멀찍이 서서 이 장면을 구경하던 우리 어머니에게 물었다

"영자야(맏누님 아명이다), 저게 다 뭐꼬?"

어머니의 천연스런 대답

" 우리 집 논밭이다."

어머니 친구 분 “? ?…”

정말 의아한 표정을 짓고 서 계셨다

 

 


 

김용락 시인

1959년 경북 의성 출생, 계명대 영문과 및 같은 대학원 석, 박사. 1984 창작과비평사의'17인 신작시집'「마침내 시인이여」에 '송실이 누님' 등으로 등단. 민족작가회의 이사, 감사, 대구지회장. 시집으로 <푸른 별>, <기차소리를 듣고 다>, <시간의 흰 길>, <단촌역>이 있다. 현재 경북외국어대학교에서 대외한국어교육전공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