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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완희 시인 / 낙하
가을 깊으면 뒷산 언덕 키다리 밤나무에서 밤톨과 밤송이들이 산 아래 밭으로 일제히 낙하를 시작한다 나는 밤송이들한테 불만이 많다 떨어지는 밤송이에 머리를 맞거나 풀을 뽑다가 두 겹 장갑을 끼고도 흙속에 숨어 있던 밤송이에 찔려 손이 가시투성이다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늦가을이면 콩밭이나 채소밭에 숨어들었던 밤송이들을 긁어모아 소각하거나 신우대 언덕의 가시두릅나무 밑동에 버림용 거름으로 덮어 준다 가시가 뒤덮고 있어도 어느 틈에 왔는지 밤톨들은 밤벌레 천지다 누가 제발 저 밤송이들에게서 수천수만 년 진화의 매듭을 풀어 밤벌레 방패도 되지 않는 가시를 없애 다오! 너도밤나무 마로니에처럼 호두처럼
정완희 시인 / 장항선 열차를 타고
기차는 칙폭거린다 대천항에서 함지박에 갈치와 넙치를 얹어 새벽열차로 자유시장에 푸른바다를 펼쳐냈던 생선장수 아주머니는 귀향중이다 날마다 대천항에서 천안의 자유시장까지 몸불편한 남편과 아들의 학비 걱정을 안고 하루분의 삶을 붙들고 돌아가는 붉은 노을이 내리는 들판 삽교 지나면 어둠이다 오늘은 대천역에서 바퀴달린 헹거를 끌고 내일이면 함지박에 갈치를 담고 바람같은 세상 한바퀴 돌아 자유시장으로 돌아올 아침 잠시 멈춰선 광천역에서 토굴 새우젓 젓갈이라고 간판을 붙인 가게옆으로 홀로계신 어머니의 유리창 불빛이 보인다 어머니는 지금 무얼하고 계실까 날마다 스쳐 지나가는 친정집 기차는 칙폭거린다 그리움의 산모롱이를 돌아 커브길을 달리며 대천역으로 가는 기차는 칙폭거린다
시집 ;장항선 열차를 타고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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