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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김두녀 시인 / 빛의 정釘에 맞다 외 3편

by 파스칼바이런 2021. 9. 6.

김두녀 시인 / 빛의 정釘에 맞다

 

 

 옷깃 단단히 여미고

 아파트 숲을 빠져나와 걷는

 플라타너스 가로수 길은 수선스럽다

 찬바람에 길을 잃은 낙엽

 발등에 차이는데

 

 화정역 광장에 내리는 햇살

 얼음덩이 쪼아대고

 대리석 틈새로 숨어드는 물기를 좇아

 멧비둘기 날아와 목을 축인다

 혹한에 용케 살아남은

 좀처럼 달아날 줄 모르는 녀석을 두고

 참 다행이라고 홀로 웃었더니

 환하게 따라 웃던 광장

 

 한낮 햇살은 날카롭다

 단풍잎 고운 색을 벗기고

 비둘기 날개에도 내려앉아 깃털을 녹인다

 흙과 바람으로 버무려진

 내 정수리마저 따갑다

 빛의 속도는 예외가 없다

 

 


 

 

김두녀 시인 / 봄꽃

 

 

바람은 머뭇거리지 않습니다

 

사랑은 순간이지만

영원으로 함께 가는

길 위의 몸짓

 

아 뜨거운 입맞춤입니다

 

 


 

 

김두녀 시인 / 파묵칼레의 오월

 

 

어디서 빙산이 떠밀려 왔는가

장미정원에 둘러싸인

파묵칼레

 

먼 길 빙벽을 타고 달려온

온기 어린 석회수

장미향에 젖어들어

꽃무리 짓더니 이내

파란 호수로 빨려든다

 

바다 달려온 꽃양귀비

십자가 깃발 높이 들고

하늘 우러러

하, 우릴 반긴다

 

 


 

 

김두녀 시인 / 바람꽃

 

 

1

퍼엉퍼엉 터지는

새하얀 저 벚꽃 좀 봐

차마 눈 못 뜨겠네

오오라

겨울잠에서 깨어난 봄바람이

밤새 팝콘을 튀겼구나

손 붙잡고 오가는 소란스런 사람들

저 바삭하고 고소한 웃음소리

 

2

빛 부신 저 꽃잎 좀 봐

바랑바랑 내려앉는 저 몸짓

나비춤이네

축복으로 쏟아지는 나비 떼

바람에 맡기면 나도 저 나비 될까

바람꽃이네

고운 빛 그대로

나비춤 바람꽃

 

 


 

김두녀(金斗女) 시인(서양화가)

전북 부안 출신. 전주교육대학교 회화과 졸업, 미술특기 교사 재직, 1994년 <해평시>에 '바가가 불렀다' 외 9편 발표하면서 작품활동 시작, 한국작가회의 고양지부장 역임, 상황문학 직전회장, 한국시인협회 회원,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회원, 서울시인상, 경기도문학상 본상 수상, 시집 <여자가 씨를 뿌린다> <삐비꽃이 비상한다> <꽃에게 묻다> <빛의 정에 맞다> 외 공저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