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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박미산 시인 / 흰 당나귀를 만나보셨나요 외 2편

by 파스칼바이런 2021. 9. 7.

박미산 시인 / 흰 당나귀를 만나보셨나요

-백석 시 풍으로

 

 

 경복궁 지나

 금천시장을 건너오면

 흰 당나귀를 만날 거예요, 당신은

 꽃피지 않는 바깥세상일랑 잠시 접어두고

 몽글몽글 피어나는 벚꽃을 바라보아요

 뜨거운 국수를 먹는 동안

 흰 꽃들은 서둘러 떠나고

 밀려드는 눈송이가

 창문을 두드려요

 펄떡이던 심장이 잔잔해졌다고요?

 흰 당나귀를 보내드릴게요

 혹한의 겨울을 무사히 지낸

 푸릇푸릇했던 당신의 옛이야기를

 타박타박 싣고 올 거예요

 흰 당나귀가 길을 잃었다고요?

 바람의 말과

 수성동 계곡의 물소리를 따라오세요

 불빛에 흔들리는 마가리가 보일 겁니다

 우리 잠시, 흰 당나귀가

 아주까리기름 쪼는 소리로

 느릿느릿 읽어주는 시를 들어보자고요

 

 


 

 

2008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박미산 시인 / 너와집

 

 

갈비뼈가 하나씩 부서져 내리네요

아침마다 바삭해진 창틀을 만져보아요

지난 계절보다 쇄골 뼈가 툭 불거졌네요

어느새 처마 끝에 빈틈이 생기기 시작했나 봐요

칠만 삼천 일을 기다리고 나서야

내 몸속에 살갑게 뿌리 내렸지요, 당신은

문풍지 사이로 흘러나오던

따뜻한 온기가 사라지고

푸른 송진 냄새

가시기 전에 떠났어요, 당신은

눅눅한 시간이 마루에 쌓여 있어요

웃자란 바람이, 안개가, 구름이

허물어진 담장과 내 몸을 골라 밟네요

하얀 달이 자라는 언덕에서

무작정 기다리지는 않을 거에요, 나는

화티에 불씨를 다시 묻어놓고

단단하게 잠근 쇠빗장부터 열 겁니다

나와 누워 자던 솔향기 가득한

한 시절, 당신

그립지 않은가요?

 

 


 

 

박미산 시인 / 시인

 

 

인천 창영국민학교 앞

손을 꼭 잡은 남매

여자아이는 교문 안으로 들어가고

오빠는 구두통을 메고 세상 안으로 돌아간다

흙먼지 뒤집어쓴 구두를

지전으로 바꾸면서

세상을 닦아냈다, 오빠는

까맣게 터진 왼손으로 내 오른손을 뜨겁게 잡고

말을 잇지 못해

시인이 되었다, 나는

오늘도 오빠의 잃어버린 말을 찾아 세상 안으로 돌아간다

 

 


 

박미산 시인

1954년 인천에서 출생. 방송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박사과정 수료. 2008 《세계일보》 신춘문예 시부문에 〈너와집〉이 당선되어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