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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윤이산 시인 / 그 바다에 다시, 서다 외 5편

by 파스칼바이런 2021. 9. 10.

윤이산 시인 / 그 바다에 다시, 서다

 

 

  아버지가 고등어를 들고 오시는 날엔

  통째로 걷어온 바다로 온 집안이 출렁거렸다

 

  어딘가 닿기 위해 온 바다를 휘젓고 다녔을 고등어

  불판 위에서도 해류를 거슬러 가는지

  몸 뒤집는 소리가 거셌다

 

  ―쪼매마 더 기다리거래이

  부레처럼 부푼 어머니 음성이 살짝 밖으로 튀었고

  거센 파랑을 잠재울 때까지

  우리는 침 삼키는 일조차 끈질기게 얌전했다

  앉은뱅이책상 다리 같았다

 

  물결을 떼어내 오래오래 씹으며

  동생은 GPS가 있으면 좋겠다고 했고

  나는 그물과 미끼를 구상했다

  언젠가는 바다를 통째로 삼켜버리리라, 다짐한 것도 같다

 

  ―이 양반 고등어 잡으러 어디까지 가신 기고?

  아버지를 잃고 점점 그물 되시는 어머니

  입매에 날물 때가 지나고 있었다

 

  그물을 들고

  등 푸른 바다를 찾아나서는 늦은 오후

  누군가가 이미 가두리해둔 바다에서

  수평선이 점점 목을 조여 왔다

 

  그물을 버리고

  왈칵, 온 바다를 들이켜기 시작했다

 

『실천문학』(2019년 겨울호)

 

 


 

 

윤이산 시인 / 칼맛

 

 

사내가 칼을 치켜들고

수평선을 내리치며 워밍업을 끝낸다

시퍼렇게 날을 벼린, 작심의 칼끝에

고등어 배가 갈라지고 뼈와 껍질에서 살점이 분리된다

껍질이 벗겨졌는데도 여전히 속살에 배어있는 물결무늬

엔진과 스크루 없이도 무늬를 저어 바다를 밀고 갈 기세다

칼질이 남긴 살점 위로 한 차례 거친 발버둥이 지나고

사내의 단호한 칼날이 단숨에 몸부림을 떠낸다

솜씨, 귀신 같아요 진짜, 꾼이신가 봐

미끌한 찬사를 꺼내놓으며 내가 즉석 상차림 앞에 끼어든다

회는 무엇보다 칼맛이지요

번개 스치듯 단박에 베어줘야 합니다

그것이 산목숨에 대한 예의이기도 하고요

몸 안 가득 번지는 피비린내를 소주로 헹궈낸 사내가

바다를 향해 밀린 오줌을 갈기고는

칼을 좀 더 갈아두어야겠다며 사포를 꺼낸다

 

바다 한가운데, 흔들리는 상판 위에서

칼맛을 씹는다

 

곧 물때가 바뀔 것 같다

 

 


 

 

윤이산 시인 / 방심(放心)

 

 

먼 데 보고 걷다 넘어져

또, 깨졌다

 

후회막급이

한꺼번에 달겨들어

방심(放心)을 볶아치지만

 

취소할 수 없는 일보(一步)

 

깁스한 팔이

변명할 수 없는 입처럼 무겁다

 

방심하느라 놓친 불온한 기미들

 

매물 의뢰하러 갔다가 밥까지 얻어먹고 왔던, 그 후에서 서너 차례 더 소주와 허심탄회를 나누었던 삼천리부동산 소장이 달포 전 급사했다는 소식을 새 간판을 갈아단 삼천리부동산에서 듣는다

 

피붙이 없는 타관의 밤이 외롭다던

입양해간 다육이가 시무룩해졌으니 한번 들러달라던

넋두리들 속에

은폐되어 있었을 기척들

 

놓치고,

허방 찔리기 직전까지는

얼굴의 안쪽이 해골인 것을

잊고 산다

 

 


 

 

윤이산 시인 / 환생역에서

 

 

받쳐준다는 말,

만져볼 때마다 참, 단단하다

헌 자루에 척추를 박아 넣은 듯

자세가 꼿꼿해진다

 

보호자는

심을 뺀 볼펜대에 몽당연필을 끼우듯

슬쩍,

받쳐주기만 하라고 일러주었다

 

교통카드에 용기를 보충하고

몽당연필의 받침대가 되러가는 길

‘환승입니다’라는 멘트를 ‘환생입니다’로 바꿔들으며

지하철에서 내려 버스로 옮겨 탄다

 

염색체가 나보다 한 개쯤 더 많다는 그 애가

운동장을 흔들며 굴러와 내 안에 몸을 밀어 넣자

고였던 불안이 떠밀려나간다

밑돌을 괴듯

 

몽당연필과 심心을 뺀 볼펜대의 합체

 

길이가 조금 늘어났을 뿐인데

하늘과 땅 사이 꽉, 차는 것 같다

 

내가 꽃대가 되어주면

그 애는 꽃을 피울 것이다

 

 


 

 

윤이산 시인 / 오른짝이 아쉽다

 

 

오른손잡이인 나

자꾸 오른짝 고무장갑만 찢어진다

 

살수록 왼짝만 수두룩 남아

 

버리긴 아깝고

왼짝을 뒤집어 오른손에 껴보면

손에 잡힌 것들이 자꾸 미끄러진다

일이 안 된다

 

왼짝을 뒤집어 오른손에 끼는 나는

수두룩하니 남은 왼짝 중 하나 아닐까

명색이 오른짝의 짝이면서도

보조용밖에 못 쓰인 건 아닐까

반대를 위한 반대편에 붙어

옳은 편의 촛대뼈나 까다

허방 나가떨어진

 

오른손에 뒤집어 낀 왼짝을 벗으며

 

김수환 추기경님

성철 스님

아버님

……

 

불쑥,

사라져간 오른짝들을 떠올린다

 

 


 

 

2009년 뉴스제주 영주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윤이산 시인 / 선물

 

 

늙은 두레상에 일곱 개 밥그릇이

선물처럼 둘러앉습니다

밥상도 없는 세간에

기꺼이 엎드려 밥상이 되셨던 어머닌

맨 나중 도착한 막내의 빈 그릇에

뜨거운 미역국을 자꾸자꾸 퍼 담습니다

어무이, 바빠가 선물도 못 사 왔심니더

뭐라카노? 인자 내, 귀도 어둡다이

니는 밥 심이 딸린동 운동회 때마다 꼴찌디라

쟁여 두었던 묵은 것들을 후벼내시는 어머니

홀몸으로 감당해야 하는 비바람이 귓속을 막았는지

추억으로 가는 통로도 좁다래지셨습니다

몇 년 만에 둥근 상에 모여 앉은 남매는

뒤늦게 당도한 안부처럼 서로가 민망해도

어머니 앞에선 따로 국밥이 될 수 없습니다

예전엔 밥통이 없어가 아랫목 이불 밑에 묻었지예

어데, 묻어둘 새나 있었나 밥 묵드키 굶겼으이

칠남매가 과수댁 귀지 같은 이야기를

손바닥으로 가만가만 쓸어 모으다가

가난을 밥풀처럼 떼먹었던,

양배추처럼 서로 꽉 껴안았던 옛날을 베고

한잠이 푹 들었습니다

문밖에는 흰 눈이 밤새

여덟 켤레 신발을 고봉으로 수북 덮어 놓았네요

하얗게 쏟아진 선물을 어떻게 받아얄지 모르는 어머니

아따, 느그 아부지 댕겨가신 갑따

푸짐한 거 보이, 올핸 야들 안 굶어도 되것구마이

미역국처럼 뜨끈한 묵소리를 싣고

일곱 남매가 또 먼 길을 떠나는 새벽

 

 


 

윤이산 시인

경북 경주에서 출생. 2009년 《영주일보》신춘문예에 〈선물〉이 당선되어 등단. 경주 문예대 수료. 경주대 사회교육원 문창반 수료. '시in' 동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