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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희 시인 / 선상처리
웃통을 벗은 사내들이 가랑이 사이로 참치 한 마리를 고정한다 그들이 신은 장화가 닿을 때 차가웠다 부드러웠다 짙은 눈썹 아래 사내의 눈빛이 참치 등위로 미끄러진다 이렇게 밝은 빛을 본 적이 없다 너무 많은 산소로 익사할 것 같아 양초가 여러 개 놓인 샹들리에가 하늘에 달려 삐걱삐걱 흔들린다 사내의 땀이 떨어지면 촛농처럼 뜨거웠다
뇌를 내리칠 몽둥이가 올라간다 눈꺼풀이 없어 눈을 뜬 채 눈알이 툭! 툭! 오바댜 스바냐 잘 배치되어 있던 신앙의 내장과 생식 기관이 흩어진다 갈라디아 말라기 흔들리는 수만의 양초 불빛들, 무엇인가? 어떻게 할 것인가? 개론서적의 제목들, 여행 사진들, 소화되지 못한 푸질리어, 자바리가 갑판 위에서 뒤섞인다 샹들리에 크리스털이 쏟아진다 날카로운 유리조각에 베이는 생각들, 터지는 제목들, 버려질 피 묻은 것들이 비리다
바늘 없는 주사기를 꼽고 수술대 위에 누워있었다 아가미와 꼬리가 잘린다 하역을 위해 몸에 구멍을 낸다 고리에 걸려 밀려가며 마침내 환자가 될 수 있었을까 줄줄이 급속냉동되는 판단들 싱싱한 죽음들이 냉동실에 다랑다랑 매달린다 나는 겨우 깨어난다 익힌 결론들이 칸칸이 생선살처럼 부서질 것이다 물에 빠진 물고기로 살아왔다
안정희 시인 / 미스터 스카치
나는 나에게 집착 접착 점착 촘촘히 붙어있다 등에 업고, 가슴으로 감싸고 웅크린 등을 쓰다듬으며 보이지 않는 끝을 찾는다 끝을 찾으면 시작할 수 있다고 날카로운 손톱이 뒤통수를 긁는다 고개가 반쯤 찢어진다 상한 얼굴을 버리고 나면 더 바짝 붙은 얼굴 아무리 나를 벗겨도 나일 거야 벗은 몸은 투명할 거야 나를 몇 바퀴 돌아 확인, 재확인 착착 점차 차차 나에게 돌아와 웅크리고 있는 너절한 심을 납작하게 누른다
안정희 시인 / 코드 41223
메이드인코리아 이태리 타올 이태리어를 모르고 반말이 모국어가 된 뒤집힌 속에는 박음질해버린 너덜너덜한 실밥들이 꼬이고 돌돌 말려서 뭉쳐져 있다 펼쳐진 한 손을 다 감당할 수 있지만 한 주먹 안에 쪼그라들 수도 있는 욕쟁이 노곤함이 색이 되어버린 온몸을 적시고 거친 거죽에 까만색 망사를 걸친다 야생의 초록 손을 번뜩이며 거친 비스코 레이온 소재가 쓱싹쓱싹 거친 숨에 빡빡 박자가 붙는다 아이들의 벌건 울음소리가 붙는다 거친 정도로 속과 겉을 늘어진 정도로 앞과 뒤를 물에게 물을 뺏기고 쪼글쪼글해진 몸 말려지다 빨랫줄에서 자주 떨어지고 쑤셔 넣은 대로 떨어진 대로 마르는 몸 양철 반찬통의 뚜껑을 따다닥 따다닥 열어 벌겋게 양념 된 배추를, 몸을 사물함 앞에서 길게 찢는 한국표준직업분류 직업분류코드 4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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