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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김효연 시인 / 통영이나 히말라야 외 2편

by 파스칼바이런 2021. 9. 14.

김효연 시인 / 통영이나 히말라야

 

 

통영에 갔다 거북선 보러 갔다 ‘처용’을

만나러 간다는 건

 

아니다 파라다이스를 마시려고

했다 다찌 집에서 술에 취하려는 건

아니다 바다 속 보물을 캐려고

했다 바다에 빠지려는 건

아니다 이름을 새기려고

했다 그들처럼 통영서 태어나고 치열하게 죽겠다는 건

아니다

 

스카르두로 떠났다 히말라야로 간다는 게

 

맞다 가서 눈을 마시며 고기는 먹지 않을 거라

했다 연필만 가져갔다는 게

맞다 산이 품고 산에 묻을 거라

했다 돌아오지 않겠다는 게

맞다 마침내 놀러오라고

했다 공책이 두툼해졌다는 게

맞다

 

맞고 아니고는 질문도 대답도 아닌

통영이나 히말라야

 

거울을 닦는다 거울이

보이도록 닦는다 통영이나

히말라야도 닦는 게

 

맞다

아니다

 

 


 

 

김효연 시인 / 애국가를 빙자한 가족사

 

 

동해물과 백두산이

아버지

낮술이 주전자를 쥐어박거나

핏발선 눈이 막판 오광에 몰려 있거나

내 눈두덩이 증오를 던지거나

 

마르고 닳도록

어머니

생선대가리를 내리치거나

일수 도장을 찍거나

파스를 칠갑하거나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

오빠 만세

광복절 특사에서 제명되거나

 

개천에서 용 났지만

개천에선 절대 용이 날 수 없어요

철학도 없이 태어난 나는 호시탐탐

호적을 팔까

처녀를 팔까

 

애국가를 부르면서 애국, 애국밖에 생각 안 나는가 봐요

눈물까지 앞을 가리면서

 

태극기를 마당에 꽂으며 혹시

함께 애국가를 부를 혈연의 그날이 온다면

 

후렴은 그때

 

『구름의 진보적 성향』 , 김효연, 시인동네, 2015년, 24~25쪽

 

 


 

 

김효연 시인 / 크라우드 펀딩

 

 

만두 먹는 중에 걸려온 전화

원고료 넣을 계좌를 물어

고소한 만두소를 꿀꺽 삼키고

수화기를 입에 바싹 대고는

전혀 마음에 없는 소리를 지껄인다

'그냥 책으로 대신하겠다는…'

 

그 속까지 훤히 아는 시인은

그럼에도 그래서는 안 되는 것이라며

적지만 꼭 보내겠다는 고료

봉이만두* 2인분 시켜 나눠먹으면

딱 좋을 금액

임에도 불구하고 단무지에 머리가 닿도록

절하는 것인데

 

시인보호구역**에는 그래도 시인을

보호하겠다는 후원형 펀딩이 있어

만두도 먹고 책 한 권이 태어나게 되는 것

 

봉이 김선달께서

그깟 바닷물 좀 팔기로서니

 

*만두가게 이름

**시집전문서점

 

 


 

김효연 시인

경남 진주에서 출생. 2006년 《시와 반시》로 등단. 시집으로『구름의 진보적 성향』 『무서운 이순 씨』가 있음. 2016년 세종도서 문학나눔 선정. 2019년 문학나눔 우수도서 선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