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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김지혜 시인 / 바람의 겹에 본적을 둔다

by 파스칼바이런 2021. 9. 15.

김지혜 시인 / 바람의 겹에 본적을 둔다

 

 

  들판의 지표면이 자라는 철

 

  유목의 봄, 민들레가 피었다

  민들레의 다른 말은 유목

  들판을 옮겨 다니다 툭, 터진 꽃씨는

  허공을 떠돌다 바람 잠잠한 곳에 천막을 친다

  아주 가벼운 것들의 이름이 뭉쳐있는 어느 代

  날아오르는 초록을 단단히 잡고 있는 한 채의 게르

  꿈이 잠을 다독거린다.

 

  떠도는 혈통들은 바람의 겹에 본적을 둔다.

  어느 종족의 소통 방식 같은 천막과 작은 구릉의 여우소리를 데려와

  아이를 달래는 밤

  끓는 수태차의 온기는 어느 후각을 대접하고 있다.

 

  들판의 화로(火爐)다.

  노란 한 철을 천천히 태워 흰 꽃대를 만들고 한 몸에서 몇 개의

  계절을 섞을 수 있는 경지

  지난 가을 날아간 불씨들이

  들판 여기저기에서 살아나고 있다.

 

  천막의 종족들은 가끔 빗줄기를 말려 국수를 말아 먹기도 한다.

  바닥에 귀 기울이면 땅 속 깊숙이 모래 흐르는 소리가 들린다.

  초원의 목마름이란 자기 소리를 감추는 속성이 있어

  깊은 말굽 소리를 받아 낸 자리마다 바람이 귀를 접고 쉰다.

 

  이른 가을 천막을 걷어 어느 허공의 들판으로 날아갈 봄.

 

 


 

김지혜 시인

본명: 김춘순. 김춘리. 1952년 강원도 춘천 출생. 수원여대 졸업. 사회복지사. 2011년 《국제신문》 신춘문예 시부문에 당선되어 등단.  2012 경기문화재단 문예진흥기금 수혜. 2012년도 천강문학상 우수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