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춘리 시인 / 두벌 감개 매듭
선명한 빛깔들이 지쳐가는 산비탈에 쓸쓸한 안면들이 몇 포기 국화꽃대로 몰려든다. 저마다 각도가 다른 바람은 부질없는 사유로 무거워진 꽃대를 흔들고 있다.
꽃은 풀어지지 않고 다만 떨어지는 것 흔들리는 방향의 뒤쪽은 늘 어지럽다 노란색이거나 붉은색이었을 씨실과 날실의 기억을 단단히 거머쥐고 몇 겹의 계절을 감아 손가락 중심에 둔다.
국화꽃의 크기가 손가락 끝에 있다. 매듭실을 왼쪽 둘째손가락에 끼워 두 번 감아 엮고 오른쪽 끈 가닥을 두 번 감아 반대편으로 엮으면 선명해지는 촉촉한 향기, 고와 고 사이를 한 칸 씩 건널 때 마다 마주치는 꽃술과 두 끈 밑으로 가장자리에 생긴 둥근 고를 잡아당기면 빛의 파편들로 결집된 꽃잎들.
왼손과 오른손 바닥에 펄럭이던 바람의 날개가 접혀진다. 툭, 떨어지는 꽃의 몸통 산막이 옛길에 쌀쌀한 저녁을 장식하던 국화꽃 가을의 안부가 감개매듭으로 묶여 있다.
< 2012년 열린시학 겨울호 '오늘의 시인' 특집 발표>
|
'◇ 시인과 시(현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 김성규 시인 / 독산동 반지하동굴 유적지 외 1편 (0) | 2021.09.16 |
|---|---|
| 김태정 시인 / 세상의 불빛 한점 외 4편 (0) | 2021.09.15 |
| 김지혜 시인 / 바람의 겹에 본적을 둔다 (0) | 2021.09.15 |
| 홍재운 시인 / 백야 외 5편 (0) | 2021.09.15 |
| 심지아 시인 / 이상한 활주로 외 1편 (0) | 2021.09.15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