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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규 시인 / 독산동 반지하동굴 유적지
가슴을 풀어헤친 여인, 젖꼭지를 물고 있는 갓난아기, 온몸이 흉터로 덮인 사내 동굴에서 세 구(具)의 시신이 발견되었다 시신은 부장품과 함께 바닥의 얼룩과 물을 끌어다 쓴 흔적을 설명하려 삽을 든 인부들 앞에서 웃고 있었다 사방을 널빤지로 막은 동굴에서 앞니 빠진 그릇처럼 햇볕을 받으며 웃고 있는 가족들 기자들이 인화해놓은 사진 속에서 들소와 나무와 강이 새겨진 동굴 속에서 여자는 아이를 낳고 젖을 먹이고 사내는 짐승을 쫓아 동굴 밖으로 걸어 나갔으리라 굶주린 새끼를 남겨놓고 온몸의 상처가 사내를 삼킬 때까지 지쳐 동굴로 돌아오지 못했으리라 축 늘어진 젖가슴을 만져보고 빨아보다 동그랗게 눈을 뜬 아기 퍼렇게 변색된 아기의 입술은 사냥용 독화살을 잘못 다루었으리라 입에서 기어 나오는 구더기처럼 신문 하단에 조그맣게 실린 기사가 눈에서 떨어지지 않는 새벽 지금도 발굴을 기다리는 유적들 독산동 반지하동굴에는 인간들이 살고 있었다
200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김성규 시인 / 굴뚝
파업이 시작되고 몇명은 굴뚝으로 올라가고 굴뚝 위에서는 모든 것이 훤히 보이지요 굴뚝 위에는 연기가 피어 오르고 당신이 없다면 우리 모두 흩어져 울었을 거예요
파업을 지지하러 몰려 온 사람들도 이제 지쳤어, 안되겠어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도 누군가를 기다리며 자기만의 굴뚝에서 연기를 피우는 사람도 굴뚝 속이라도 들어가 손바닥을 쬐고싶은 사람도 내려오면 안되요 끝까지 버텨 보세요 얼어붙은 눈물 목걸이를 목에 걸어주는 사람도 내려오라 목이 쉬어 소리 지르는 가족들도 굴뚝에서 내려오기 전까지는 모든 것이 보이지요
하얀 구름을 찍어대는 굴뚝도 이젠 좀 쉬어야지 모두가 굴뚝 주변에서 뭉게뭉게 이야기를 피울때 이야기가 사방으로 흩어져 구름이 될 때 지나가던 구름이 굴뚝 위에서 쉬다 근심 많은 사람들 이마 위로 쏟아질 때 드디어 굴뚝에서 연기가 멈추고 공장도 지쳐 쓰러졌어 이제 모두 집으로 돌아가 밀린 잠을 자야지 언제 우리가 굴뚝 위로 올라왔지 굴뚝 위의 사람들은 언제 내려가야 하는지 모르고 내려가야 할 사다리마저 치워지면 굴뚝 위의 사람이 종일 뱉어내는 한숨으로 안개가 끼고
지상의 인간들은 가끔 이야기한다 모든 것이 보이지 않아 눈이 멀어버렸나봐 굴뚝 위로 올라간 사람들은 먼곳을 보며 노래하네 파업이 시작되고 몇명은 굴뚝으로 올라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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