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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기원 시인 / 테이블은 듣는다
죽어, 테이블이 되었다
테이블은 듣는다 오전 열한 시 익숙한 그녀의 발걸음 소리 노트북을 펼쳐 자판에 손을 얹은 채 멍하니 바라보다 어제의 이야기를 빠르게 이어가는 소리 에스프레소 흙갈색 향기를 듣는다
테이블은 듣는다 오후 두 시 결별을 고하는 남자의 얼굴을 바로 보지 못하는 채 외면한 여자의 가슴이 사선으로 갈라지는 소리 태중의 아기 숨소리 세피아빛 홍차 식어가는 소리
테이블은 듣는다 오후 네 시 깨알 같은 글씨의 계약서를 좌르륵 펼치며 채 읽기도 전에 서명란을 가리키는 우렁한 소리 아이스 아메리카노 얼음 부딪치는 소리
테이블은 듣는다 저녁 여덟 시 연인들의 은밀한 눈빛이 오가는 소리 없는 소리 맞잡은 손으로 테이블은 잠시 데워지고 카페라떼 우유 그림 보얗게 풀어지는 소리
빈 테이블 위 유령들의 독백처럼 점점이 흩어진 하루의 부스러기들 쟁반 위에 무심히 쓸어 담는 소리 듣는다, 테이블은 다만, 듣는다
계간 『시인수첩』 2021년 봄호 발표
강기원 시인 / 전광판 파도
시내 한복판 전광판 속에서 파도가 친다 넘칠 듯 넘칠 듯 수족관 속에 갇힌 파도의 고래가 밀려와 유리벽에 부딪친다
파도 아래 사람들 물 밑의 부유하는 발걸음들 고래 입 속인지 모르는 채 걸어간다 왜 이리 숨이 막히지? 왜 이리 어지럽지? 서로를 의심하며, 흘깃거리며 그러나 무심히 흘러내린 마스크 끌어올려 틈 없음을 다시 확인하고 동공에 서리는 뿌연 풍경을 연신 닦아내며 마른 물속을 걸어간다
전광판 속의 파도, 파도 속의 고래 일 분에 열여덟 번 오가는 파랑을 타고 투명한 벽에 온몸을 쉼 없이 부딪쳐온다 깨질 듯 깨질 듯
범람의 아슬한 수위를 나누어 갖고 물에 잠긴 도시는 서서히 질식 중이다 말미잘 같던 말들이 사라지고 우리는 서로의 魚種을 분간할 수 없다 죽은 자와 산 자의 목소리가 뒤섞이는 臨終夢 속을 생시인 듯 아닌 듯 떠 간다
계간 『애지』 2021년 봄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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