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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문인수 시인 / 간통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1. 9. 23.

문인수 시인 / 간통

 

 

  이녘의 허리가 갈수록 부실했다. 소문의 꼬리가 길었다. 검은 윤기가 흘렀다. 그 여자는 삼단 같은 머리채를 곱게 빗어 쪽지고 동백기름을 바르고 다녔다. 언제나 발끝 쪽으로 눈 내리깔고 다녔다. 어느 날 또 이녁은 샐녘에사 들어왔다. 입은 채로 떨어지더니 코를 골았다. 소리 죽여 일어나 밖으로 나가봤다. 댓돌 위엔 검정 고무신이 아무렇게나 엎어졌고, 달빛에, 달빛가루 같은 흰내의 모래가 흥건히 쏟아져 있었다. 내친김에 허둥지둥 그 여자의 집으로 달려 갔다. 방올음산 꼭대기에 걸린 달도 허둥지둥 따라 왔다. 해묵은 싸릿대삽짝을 지긋이 밀었다. 두어 번 낮게 요령 소리가 났다. 뛰는 가슴 쓸어 내리며 마당으로 들어섰다. 댓돌 위엔 반듯 누운 옥색 고무신. 고무신 속을 들여다 봤다. 아니나 다를까 달빛에, 달빛가루 같은 흰내의 모래가 오지게도 들었구나, 내 서방을 다 마셨구나. 남의 농사 망칠 년이! 방문 벌컥 열고 년의 머리끄댕이를 잡아 챘다. 동네방네 몰고 다녔다.

 

   소문의 꼬리가 잡혔다. 한 줌 달빛이었다.

 

 


 

 

문인수 시인 / 적막 소리

 

 

   젖어도 젖을 일 없는 전문가, 의자가 쉬고 있다.

   적막도 산천에 들어 있어 소리를 내는 것이겠다.

   적막도 복받치는 것 넘치느라 소리를 내는 것이겠다.

   새소리 매미소리 하염없는 물소리, 무슨 날도 아닌데 산소엘 와서

   저 소리들 시끄럽다. 거역하지 않는 것은

   내가 본래 적막이었고 지금 다시

   적막 속으로 계속 들어가는 중이어서 그런가.

   그런가보다, 여기 적막한 어머니 아버지 무덤가에 홀로 앉아

   도 터지는 생각이나 하고 있으니, 소주 몇잔 걸치니, 코끝이 시큰거려 냅다 코 풀고 나니,

   배롱나무꽃 붉게 흐드러져 왈칵!

   적막하다. 내 마음이 또 그걸 받아 그득하고 불콰하여 길게 젖어 풀리는

   저 소리들, 적막이 소리를 더 많이 낸다.

   또 그 소리에 그 소리인 부모님 말씀,

   새소리 매미소리 하염없는 물소리……

   적막도 산천에 들어 있어 소리를 내는 것이겠다.

 

 


 

문인수 시인(1945-2021)

1945년 경북 성주에서 출생. 동국대학교 국문과 중퇴. 1985년 《심상》 신인상을 통해 등단. 시집으로 『늪이 늪에 젖듯이』(심상, 1986) 『세상 모든 길은 집으로 간다』(문학아카데미, 1990) 『뿔』(민음사, 1992) 『홰치는 산』(만인사, 1999) 『동강의 높은 새』(세계사, 2000) 『배꼽』(창비, 2008) 이 있음. 1985년 심상 신인상. 1996년 제14회 대구문학상, 2000년  제11회 김달진문학상, 2003년 제3회 노작문학상, 2007년 제7회 미당문학상 수상. 2007년 제10회 가톨릭문학상. 2016년. 동리목월문학상 목월문학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