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인수 시인 / 간통
이녘의 허리가 갈수록 부실했다. 소문의 꼬리가 길었다. 검은 윤기가 흘렀다. 그 여자는 삼단 같은 머리채를 곱게 빗어 쪽지고 동백기름을 바르고 다녔다. 언제나 발끝 쪽으로 눈 내리깔고 다녔다. 어느 날 또 이녁은 샐녘에사 들어왔다. 입은 채로 떨어지더니 코를 골았다. 소리 죽여 일어나 밖으로 나가봤다. 댓돌 위엔 검정 고무신이 아무렇게나 엎어졌고, 달빛에, 달빛가루 같은 흰내의 모래가 흥건히 쏟아져 있었다. 내친김에 허둥지둥 그 여자의 집으로 달려 갔다. 방올음산 꼭대기에 걸린 달도 허둥지둥 따라 왔다. 해묵은 싸릿대삽짝을 지긋이 밀었다. 두어 번 낮게 요령 소리가 났다. 뛰는 가슴 쓸어 내리며 마당으로 들어섰다. 댓돌 위엔 반듯 누운 옥색 고무신. 고무신 속을 들여다 봤다. 아니나 다를까 달빛에, 달빛가루 같은 흰내의 모래가 오지게도 들었구나, 내 서방을 다 마셨구나. 남의 농사 망칠 년이! 방문 벌컥 열고 년의 머리끄댕이를 잡아 챘다. 동네방네 몰고 다녔다.
소문의 꼬리가 잡혔다. 한 줌 달빛이었다.
문인수 시인 / 적막 소리
젖어도 젖을 일 없는 전문가, 의자가 쉬고 있다. 적막도 산천에 들어 있어 소리를 내는 것이겠다. 적막도 복받치는 것 넘치느라 소리를 내는 것이겠다. 새소리 매미소리 하염없는 물소리, 무슨 날도 아닌데 산소엘 와서 저 소리들 시끄럽다. 거역하지 않는 것은 내가 본래 적막이었고 지금 다시 적막 속으로 계속 들어가는 중이어서 그런가. 그런가보다, 여기 적막한 어머니 아버지 무덤가에 홀로 앉아 도 터지는 생각이나 하고 있으니, 소주 몇잔 걸치니, 코끝이 시큰거려 냅다 코 풀고 나니, 배롱나무꽃 붉게 흐드러져 왈칵! 적막하다. 내 마음이 또 그걸 받아 그득하고 불콰하여 길게 젖어 풀리는 저 소리들, 적막이 소리를 더 많이 낸다. 또 그 소리에 그 소리인 부모님 말씀, 새소리 매미소리 하염없는 물소리…… 적막도 산천에 들어 있어 소리를 내는 것이겠다.
|
'◇ 시인과 시(현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김두녀 시인 / 잎의 말 외 2편 (0) | 2021.09.23 |
---|---|
김기연 시인 / 꿈의 판화 외 3편 (0) | 2021.09.23 |
맹문재 시인 / 자기소개서 외 3편 (0) | 2021.09.23 |
민왕기 시인 / 시절 외 5편 (0) | 2021.09.23 |
김광남 막달레나 시인 / 석모도에서 외 4편 (0) | 2021.09.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