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계헌 시인 / 자판기
뾰족한 손끝으로 네 심장을 누른다면 뜨거운 커피 대신 콸콸 붉은 피 솟을 거다 찔레 하얀 가슴이 조리고 졸아 타닥타닥 숭얼숭얼 불꽃 맺힐거다.
오늘은 그대를 위해 달콤 쌉살한 시를 쓰려했는데
이미 현실과 가상의 순간 속에 갇힌 그대 나는 단 한 줄의 행간도 마련하지 못한 채 네 끓는 목숨 쏟아지기 직전 마음의 고요를 두드리고 있는데 누룩처럼 끓어오르는 서정의 은유대신 박하향 풍기는 고열의 아우성이 쏟아지리라고
생의 목덜미를 잡는 위험한 사랑과 시간의 하류로 떠내려가는 한 컷 흑백필름에 대해서 모든 생성과 소멸에 대해서 나는 제법 묵직한 은화를 짤랑이며 네 심장에 새로운 이미지를 꽂으리라고 섭씨 90°의 배합되지 못한 내 詩의 꿈들 아직도 동굴 속에서 행간 사이 헤매고 있는데
송계헌 시인 / 나비영혼
잔설을 이고 있는 무덤을 보았네 반나절만 놀다가는 흰 그림자같은 겨울 외투 속에 웅크리고 있는 봄바람 한 자락 사이로 때 이른 나비 한 마리 산 목숨의 눈꺼풀 아래 머문 햇살이듯 젖은 날개 한 쪽 허공에 빠뜨리고 있네 고요의 혀가 많은 말을 삼켜 버렸으므로 전생일까 현시에서 내생으로 환부의 솔기를 뒤척이는 저 날개, 더듬이 목숨의 끈이란 이리도 가벼이 경계를 허무는 것을 아직 미열이 남아 있는 흰 눈은 더운 이마를 서서히 소멸시켜 나비 영혼의 무늬를 짰을 거라고 세상 저 편에 내 어지러운 머리를 뉠 수없듯이 꺾여진 나비 날개를 그대가 바라볼 수없듯이 맨살 지익 긁으며 뽀얀 국물같은 바다로 노 저어가는 낡은 LP판 한 장 무덤 어깨 위에 얹어 놓았을 거라고
녹슨 청동 신발과 비닐 샌달 사이를 오가는 죽은 자의 날갯짓
송계헌 시인 / 그믐밤
가장 고요할 때 고요는 무기가 된다 한적한 골목 탱자나무 가시는 적막을 빨아들이며 촉수를 반짝인다 켜켜이 쌓인 고요의 순도를 삭히고 숙성시키며 화석 한 잎처럼 농익은 정신을 매달게 된 것 깊은 산중 까마득한 절벽을 보라 말없음의 높이에 달빛 한 칸 들여 이토록 숨찬 급류의 사랑을 몸 밖으로 내치는 것을 숱한 목숨들이 찌르고 다치고 숨 허덕이는 지상의 날들에서 한 구비 고요를 만난다는 건 석류의 주홍빛 잇몸에 가 박히는 가을의 잔광 같은 것일까 숨겨놓은 고요의 발톱에 걸려 넘어지는 修辭들 그들을 휘감은 천이며 장신구들이 때로는 오랏줄로 쇠붙이로 자기모순에 결박당하는 것을 본다
내 몸에 위태로운 송곳으로 달라붙는 적막을 달빛으로 뜯어내는 그믐밤의 완강함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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