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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추종욱 시인 / 너무나, 너무나도 미래적인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1. 9. 26.

추종욱 시인 / 너무나, 너무나도 미래적인

 

 

  삶의 드라마가 펼쳐진 중심에는 늘 CCTV가 있다 생의 모든 표정을 영화의 주인공들처럼 빼곡히 저장한다 은행경비원은 CCTV의 고정출연자다 필름 안에는 몇 세기 후라는 우주정거장을 펼친다 기승전결이 뻔한 카메라 스토리를 따라가다 하품을 하는 사이, 사람들이 암호 스위치를 꾹 누르면 텔레포트된 입자는 현금으로 나타났다 통장에서 전해져오는 미래에 사람들은 감탄사를 내뱉는다 그들은 점쟁이처럼 먼 미래에 가본 듯 고개를 끄덕인다 누군가는 신비로운 곳으로 향해 날아가고 누구는 추억을 저당 잡히며 사채의 레이저빔에 익숙한 해골로 또르르 구르기도 한다 때때로 무기력한 의식에서 나처럼 아름다운, 찬란한, 따위의 말에 입 맞춘 테러리스트를 꿈꾸는 발칙한 시선을 창밖 너머까지 풀어놓는다 여기에 모여든 꿈의 입자가 오늘도 끊임없이 서로 전송되어 각본 없는 삶의 증거로 장시간 녹화되고 있다 우리는 CCTV를 피해갈 수 없다 나는 그들이 기억하는 많은 입자들을 따라가는 카메라를 살펴본다 그들은 우주의 성운처럼 빛나고 고요하다

 

 


 

 

추종욱 시인 / 최근의 시식용 공식

 

 

내 아름다운 생의 수식들을 조금씩 씹어 넘긴다

꼬불꼬불한 소장과 대장을 지나

하루하루의 수식을 풀어 쓰고 소화시킨다

공식의 내장을 씹는 맛이 좋다

그래서 나의 공식들이 전부 소화될 때까지

세상은 순환소수 같은 운명이다

해마다 새것 같은 계절이 오고

좁고 가파른 식도를 따라가다 보면

사랑도 죽음도 첫 수식들인 것 같아서

아직 모든 상징이 소화가 되지 않아

내 몸은 부지런히 풀어 갈 수밖에 없는 생이다

 

 


 

추종욱 시인

2007년 계간 《서시》 2007년 하반기 신인상에 〈보르헤스의 숲에는 푸른 숲이 있을까?〉 외 4편이 당선되어 등단. 현재 난시 동인, 시산맥 회원, 서시작가회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