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춘 시인 / 침묵의 강, 침묵의 도시
세상 중심에서 세상 끝으로 사라진 이름들, 저 강 하구에 잠든 이 누구인가
하늘의 명(命)인가, 땅의 영(令)인가 아무도 대답 없는 슬픈 비명의 이 지상 한 끝점에서 누구의 명으로 수초가 되었는가 누구의 입술로 수궁 넋이 되었는가 이 도시의 한 쪽 뿌리가 흔들리는 밤, 이중성의 간판들은 불빛을 타고 흔들리는데 점점이 강물 속으로 사라진 이름들
아, 어디로 가야 하나, 어디까지 가야 하나 쎄이렌의 노래처럼, 물속의 비밀처럼 부유하는 입들의 알 수 없는 저 몸통의 꼬리들, 입에서 입을 타고 둥둥 떠 흘러가고 있다
꿈을 잃고 신발을 잃고 뼈를 잃고 아득히 떠도는 저 하구의 안개 같은 구름 떼, 누구의 혼령으로 이 지상의 암호를 건져 올릴 수 있을까 잠들게 할 수 있을까 강물이여! 침묵이여! 수초섬이여!
계간 『시향』 2020년 가을호 발표
|
'◇ 시인과 시(현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김지희 시인 / 가을, 낯선 도시를 헹구다 외 2편 (0) | 2021.09.27 |
---|---|
한인숙 시인 / 곰팡이 외 2편 (0) | 2021.09.27 |
김왕노 시인 / 빅토르 최, 그 늙은 꿈 (0) | 2021.09.27 |
김광호 시인 / 깨끗하고 검은 목욕 외 1편 (0) | 2021.09.26 |
하정임 시인 / 저녁 외 2편 (0) | 2021.09.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