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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이영춘 시인 / 침묵의 강, 침묵의 도시

by 파스칼바이런 2021. 9. 27.

이영춘 시인 / 침묵의 강, 침묵의 도시

 

 

세상 중심에서 세상 끝으로 사라진 이름들,

저 강 하구에 잠든 이 누구인가

 

하늘의 명(命)인가, 땅의 영(令)인가 아무도 대답 없는

슬픈 비명의 이 지상 한 끝점에서 누구의 명으로 수초가 되었는가

누구의 입술로 수궁 넋이 되었는가

이 도시의 한 쪽 뿌리가 흔들리는 밤, 이중성의 간판들은 불빛을 타고 흔들리는데 점점이 강물 속으로 사라진 이름들

 

아, 어디로 가야 하나, 어디까지 가야 하나 쎄이렌의 노래처럼,

물속의 비밀처럼 부유하는 입들의 알 수 없는 저 몸통의 꼬리들,

입에서 입을 타고 둥둥 떠 흘러가고 있다

 

꿈을 잃고 신발을 잃고 뼈를 잃고

아득히 떠도는 저 하구의 안개 같은 구름 떼,

누구의 혼령으로 이 지상의 암호를 건져 올릴 수 있을까

잠들게 할 수 있을까

강물이여! 침묵이여! 수초섬이여!

 

계간 『시향』 2020년 가을호 발표

 

 


 

이영춘 시인

1976년 《월간문학》으로 등단. 시집으로 『시시포스의 돌』, 『귀 하나만 열어 놓고』, 『네 살던 날의 흔적』, 『슬픈 도시락』』, 『시간의 옆구리』, 『봉평 장날』, 『노자의 무덤을 가다』, 『신들의 발자국을 따라』와 시선집『들풀』『오줌발,별꽃무늬』 등이 있음. 윤동주문학상. 고산문학대상. 인산문학상. 강원도문화상. 동곡문화예술상. 한국여성문학상. 유심작품상 특별상 등을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