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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송재학 시인 / 일출이라는 눈동자

by 파스칼바이런 2021. 10. 2.

송재학 시인 / 일출이라는 눈동자

 

 

성한 눈썹만 겨우 데려왔으니

저게 누군가의 눈동자였는지

왜 뭉개진 입이었는지

오래전부터 궁금하더니

바다의 손아귀에서 천리만리 도망쳐온

사내인지 계집인지

여하간 보석을 훔친 발걸음이라 하네

끝 간 데 없이 멀어지는 난파선이야 그렇다 치고

난바다 든바다이거나

그쯤이면 팽개치고 보름 보기로 살아도 좋으련만

애원마저 꿀꺽 삼키고

무정하다는 글자를 휘갈기지 않고도

오늘 아침 눈꺼풀과 손가락은

눈 부릅뜬 일출까지 직선이라고

언구럭 부리는

파도가 곁눈질 하면서

제 눈알 한쪽을 남몰래 뽑아 바친 걸

모르는 개뿔 소리이지

벌겋게 달구어진 해를 안와골절 속에 다시 집어넣어봐야

단맛이든 쓴맛이든 요량하겠지

 

계간 『상징학연구소』, 2021년 여름호

 

 


 

송재학 시인

1955년 경북 영천에서 출생. 경북대학 치과대 졸업. 1986년 《세계의 문학》으로 등단. 시집으로 『얼음시집』,『살레시오네 집』,『푸른빛과 싸우다』,『그가 내 얼굴을 만지네』 등이 있음. 김달진문학상· 대구문학상, 제25회 소월시문학상, 제5회 이상시문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