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술 시인 / 부레
세상에 가벼운 물고기는 없다. 캄캄한 심해로 가라앉지 않으려, 물위로 떠올라 날짐승의 먹이가 되지 않으려 안간힘으로 버티는 중력과 부력 사이
숨쉬기, 숨고르기가 물고기의 목숨이다. 깊은 물 속 큰 숨, 얕은 물 속 작은 숨, 참고 들이쉬고 내어 쉬고 참는 들숨 날숨 끝에 맺히는 물방울, 힘겨운 작은 숨결들 모여서 물결이 된다. 숨결과 물결이 만나는 자리마다 파도는 태어나 물이랑, 물마루로 일어서고
바닥을 기거나 물위를 날아다니며 소용돌이 해류를 지나 물너울을 헤쳐가려면 더 큰 숨이 필요하다. 큰 한숨, 큰 탄식, 소리 나지 않는 비명과 삼킨 울음을 담을 그릇 하나 쯤 누구나 몸속에 있다. 너무 크면 가라 앉고 너무 작으면 떠오르고 마는 저마다의 숨겨둔 눈물 덩어리, 꽃다운 그릇들
세상에 가벼운 목숨은 없다. 모래언덕 아래 숨겨진 어두운 무덤 계곡을 지나 비로소 꽃이 되는 물고기들, 혼자이거나 여럿이거나 작은 숨 한번에 끌려오는 큰 물결을 너그러운 지느러미로 받아준다. 크고 작은 흔들림이 쌓이고 쌓여서 태어나는 바다, 세상에 가벼운 바다는 없다.
김형술 시인 / 바람 부는 날
바람 세차게 부는 날엔 영도다리로 갈까 흔들리는 바다를 건너기 전에 다리 아래 숨은 점집에 들어가 내 안에 그리움들 얼마나 남아 흔들리는지 눈매 서늘한 무녀와 마주 앉아 볼까
숨가쁘게 정박하고 또 출항한 시간들 어느 그물에도 걸리지 않은 채 거친 해류 따라 떠도는 이름들 바다새처럼 물 위에 내려앉은 햇빛에게 건네주고 빈 마음으로 먼 바다 섬이 될까
어제는 오늘 속으로 흐르고 오늘은 또 어제의 푸른 난간이니 낡은 옷소매에 매달리는 바람이 이끄는 대로 그리운 것들의 사이를 건너볼까
아무 그리움 없이 천년을 건너가는 바람이나, 햇빛이나 되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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