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위상 시인 / 상가(喪家)
서천으로 흘러가는 푸른 곡소리 비가 내리는 포구를 적시고 있다 안개에 젖은 갯벌 열병을 앓아 밤새도록 개 짖는 소리 꼬리를 물고 갯바람은 더 이상 불지 않는다 머리칼 푼 젊은 아낙 한 생애를 풀어헤치고 힘 센 어부들은 죄다 취해있었다 잔인한 바다, 바다여 긴 이빨로 나도 삼켜다오, 삼켜가다오 어둠이 어둠으로 변명하고 별 스러지는 상가
권위상 시인 / 직공(職工)
1. 익숙한 밤을 공복으로 지키고 온종일 작업한 가면을 손질한다 가진 것은 우리들의 빈 손 하나 무거운 의식의 베스트셀러를 찌르고 떠도는 햇살 몇 가닥과 어울릴까 이 나라 신생을 이마 짚어 갱년기를 진단하고 하루 반 넘게 다스린 근육은 이제 만나야 할 것은 자유다 근 달포 만에 쓰는 일기장 한바닥, 그 방바닥에 한 장 구겨진 바람으로 뒹굴고 가장 깊은 의식의 수렁으로 빠지고 어설픈 연기로 열연한 후 이끼 낀 가면을 벗으면 아, 나무의 목숨, 이파리는 잘게 떨어 허리깨로 파고드는 생활의 통증 찬바람을 잠재우며 다시 씨앗 한 움큼 뿌려본다
2. 저녁연기는 빠른 바람들과 어울려 형식의 숲 속으로 퇴각한다 기체로 가라앉은 공단 변두리 허물어진 모퉁이를 꺾으면 전생에 떼 지은 혼, 낯선 어둠 일상으로 만나고 좌절 같은 전신주에 모로 부딪혀 쓰러져 피 흘리는 그림자를 끌고 빈손으로 왔으므로 연기로 돌아간다 시퍼런 겨울 어깨너머로 할아버지 천년 기침소리 금년 말 내릴 눈사태를 예언하며 꺼져가는 심지로 돌아눕다 안개, 상체 잃은 바다 너는 어디서 울음 울고 오느냐 어제도 꿈속에서 내린 빗물은 소금기로 남아 이 작은 가슴을 절이는구나 상하지 않은 기도와 햇살의 커튼을 걷어 올리면 다시 푸르른 아침으로 일어서고 아, 누군가 굳은살 위에 못질을 시작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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