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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권위상 시인 / 상가(喪家)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1. 10. 6.

권위상 시인 / 상가(喪家)

 

 

서천으로 흘러가는 푸른 곡소리

비가 내리는 포구를 적시고 있다

안개에 젖은 갯벌 열병을 앓아

밤새도록 개 짖는 소리 꼬리를 물고

갯바람은 더 이상 불지 않는다

머리칼 푼 젊은 아낙

한 생애를 풀어헤치고

힘 센 어부들은 죄다 취해있었다

잔인한 바다, 바다여

긴 이빨로

나도 삼켜다오, 삼켜가다오

어둠이 어둠으로 변명하고

별 스러지는

상가

 

 


 

 

권위상 시인 / 직공(職工)

 

 

1.

익숙한 밤을 공복으로 지키고

온종일 작업한 가면을 손질한다

가진 것은 우리들의 빈 손 하나

무거운 의식의 베스트셀러를 찌르고

떠도는 햇살 몇 가닥과 어울릴까

이 나라 신생을 이마 짚어

갱년기를 진단하고

하루 반 넘게 다스린 근육은

이제 만나야 할 것은 자유다

근 달포 만에 쓰는 일기장 한바닥, 그 방바닥에

한 장 구겨진 바람으로 뒹굴고

가장 깊은 의식의 수렁으로 빠지고

어설픈 연기로 열연한 후

이끼 낀 가면을 벗으면

아, 나무의 목숨, 이파리는 잘게 떨어

허리깨로 파고드는 생활의 통증

찬바람을 잠재우며

다시 씨앗 한 움큼 뿌려본다

 

2.

저녁연기는 빠른 바람들과 어울려

형식의 숲 속으로 퇴각한다

기체로 가라앉은

공단 변두리 허물어진 모퉁이를 꺾으면

전생에 떼 지은 혼, 낯선 어둠

일상으로 만나고

좌절 같은 전신주에 모로 부딪혀

쓰러져 피 흘리는 그림자를 끌고

빈손으로 왔으므로 연기로 돌아간다

시퍼런 겨울 어깨너머로

할아버지 천년 기침소리

금년 말 내릴 눈사태를 예언하며

꺼져가는 심지로 돌아눕다

안개, 상체 잃은 바다

너는 어디서 울음 울고 오느냐

어제도 꿈속에서 내린 빗물은

소금기로 남아

이 작은 가슴을 절이는구나

상하지 않은 기도와 햇살의 커튼을 걷어 올리면

다시 푸르른 아침으로 일어서고

아, 누군가

굳은살 위에 못질을 시작하는가

 

 


 

권위상 시인

부산에서 출생. 2012년 《시에》로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