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찬 시인 / 올리브 동산의 7월 칠석(七夕)
‘그 여름에 리키아로 떠나는 건 아니래’ ㅡ故 김희준의 시 「7월 28일」중에서
그 여름의 7월은 김희준 시인 에게 태양력에서 녹아내린 밀가루반죽 올리브 동산의 급경사면이었을까
서로의 발톱을 깎아주다가 몸에 새긴 패랭이꽃 꽃 모양이 입체적이 아니라고 서로의 모서리가 아프도록 뾰족한 말을 주고받다가 웃기도 하다가
그러다가 사슴뿔을 새긴 허리 아래 문신이 외벽을 타고 허공으로 파고들던
계절이 아닌 여름이 비를 뿌리고 오다가 꽃들이 저물기엔 너무 이른 밤으로 멀리 떠나는 심야의 불빛처럼 포말하우트의 농무처럼
몽롱한 안개 속에 꺼내든 시는 발가락이 갯벌에 닳는 막연한 기분 마틸다, 어서 짐을 싸자 마틸다 순결한 키스는 열 살 때 상처 밖에 없는 파과처럼 파삭파삭 눈두덩에 접혔다 그랬다
금기된 사랑이라 발설하지 못했던 7월이 기승을 부렸다 라고 고백한 것도 7월
방황하는 너 영영 발음되지 않는 이름을 지우개로 지우기 위해 마틸다, 너는 떠났다
그 여름에 리키아로 떠나는 건 아닌데 아니었는데, 아니었는데
*김희준의 유고(遺稿)시집, 「언니의 나라에선 누구도 시들지 않기 때문,」의 창가에 맥없이 주저앉아 그 떨림에 파스티슈pastiche하게 되다.
계간 『시와 편견』 2021년 여름호 발표
김영산 시인 / 눈치코치 마밀라피나타파이(Mamihlapinatapai)
나는 카프카스에서 온 청년
충남 태안군 원북면 신두리 해안사구海岸沙丘를 걷다가 신두리 모래밭은 신두리 원시사막 그대로 놓아두고
차탈회이위크까지 맨발로 혼자 걸어가지 걸어가서 먼지 쌓인 고대문명의 위캔드 분위기를 재량껏 휘젓다올 생각
코주부 코끼리 일가가 코로나바이러스, 코비드19를 몰고 온들 애이불상哀而不傷 코끼리 큰 코를 막아설 처지는 아니지 놀란 멧돼지가 굴뚝 타고 올라가 검은 달빛을 파먹어도
득템 없는 일에 마밀라피나타파이Mamihlapinatapai, 눈치코치 없이 하르마탄 열풍을 핑계로 속수무책 방역마스크에 콧구멍 가리고 도심을 활보할 것인가
콧김 센 바람을 피해 신두리 해안사구 깊숙이 코호트 자가격리, 나 몰라라 갇혀 지낼 것인가
*마밀라피나타파이Mamihlapinatapai : 눈치보기. 세상에서 뜻이 젤 긴 단어(1993년 기네스북)
계간 『시와 세계』 2021년 여름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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