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병길 시인 / 벽지는 나무다
벽지는 색이 바래는 것이 아니다 자기의 모습을 찾아가는 것이다 뿌리와 잎을 지녔던 나무였다고 보여주는 것이다 안개와 비를 맞는 숲에서 새와 짐승들의 산에서 살아 있고 싶은 것이다
그늘에 갇혀 그늘을 만들지 못하는 나무는 나무가 아니라고 고육을 짜내는 것이다 벽에 매달려 입김으로 연명하지는 않겠다고 벽지에 그려진 꽃마저 떨어뜨리며 나무로 돌아가려는 것이다
바퀴벌레나 찾아드는 꽃은 더디게 지는데 반지하 백열등이 해처럼 떠서 꿈조차 잊을까 두려운 벽지는 알몸을 통째 드러내 보이는 것이다
강병길 시인 / 도배일기 46-노새
이슬 젖은 조간신문 펼쳐보다 스님 신부님 함께 오체투지로 도배하는 사진을 만났다
저렇게도 道排를 하는구나
목장갑 나란히 길에 붙는다 쓰고 버리는 실장갑처럼 쓰고 버리는 몸뚱이 길에 부리며 하늘이 두려운 사람들이 도배를 한다
길을 줄이는 자벌레들 앞에서 더듬이가 되어 기어서 간다
빙판 같은 아스팔트에 이마를 붙이고 사지와 가슴으로 도배하며 간다
밤을 건너 온 사진 속의 노새들이 땀에 젖어 도배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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