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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박주용 시인 / 옹이 외 3편

by 파스칼바이런 2021. 10. 20.

박주용 시인 / 옹이

 

 

난다 냄새 난다 나는 내가 긁어 부스럼이라 냄새 난다 나는 나를 날린 셈인데 냄새 나는 나는 나는 새에게도 냄새 난다 냄새는 냄새를 전이시켜 새똥 싼 내 하늘도 냄새 난다 냄새는 자꾸 가려워 구름을 비벼대는 것이어서 충혈 된 내 먹구름도 냄새 난다 소나기 한 줄금 쏟아내면 냄새가 사라질 것이란 기대는 금물 사납게 짖어대는 내 번개가 아직도 그 속에 눈이 번쩍 도사리고 있어 크릉크릉 냄새 난다 아귀를 맞추어 장미꽃을 밀어 올리던 내 거미줄에도 말 달리며 방방 뛰던 꽃물이 남아 있기는 마찬가지 옹헤야 냄새 난다 어절씨구 냄새 난다 소리 높여 노래 부르기는 시기상조 이제는 내가 나를 더불고 슬금슬금 거문고를 타야 할 때 내가 나를 데리고 묵상에 들어야 할 시간 소리 없이 냄새 나고 냄새 없이 냄새 난다 내가 나를 산책한 냄새 한 무더기 내 안을 단단히 버티어 간다.

 

[2014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작]

 

 


 

 

박주용 시인 / 등심초

 

 

  물고기가 하늘을 날며 새의 속내를 들여다본다 누군가를 꿰뚫어본다는 것 목숨 거는 일이라서 구름을 날고 있는 새들도 끼룩끼룩 목이 멘다

 

  내시경으로 읽어야 할 세상 청진기로 점자 두드리며 살았으니 그동안 나는 어둔 먹구름이었다 누군가의 속내를 읽어낸다는 것 내가 먼저 환해져야 하는 까닭에 이마에 등불을 켠다 불 켜고 파고들 때마다 무슨 꽃은 피어나겠지만 팍팍한 세상 국물은 김칫국물이 제격이라서 아가리 딱딱 벌려 한 수저씩 떠 넣는다 저 꽃은 찔레꽃 저 꽃은 장미꽃 저 꽃은 무슨 꽃 꽃들은 하나 둘 딸꾹질로 피어나 목구멍을 역류하겠지만 나 또한 백 년쯤은 숨을 참아야 하리 뻐끔뻐끔 장호흡을 할 때마다 몸뚱어리에 가시가 돋아나 속을 긁어놓겠지만 나 또한 천 년쯤은 꿰는 아픔을 견뎌야 하리

 

   아가미에서 뿜어져 나오는 거친 호흡에 내 속도 탄다 꿴 자나 꿰인 자나 서로가 아프기는 마찬가지 아픔도 지나치면 숨조차 사그라지는가 나 그대에게 다가가기까지 아직 헛기침이 한창인데 그대의 심장엔 벌써 땅거미가 밀려들고 있다 줄줄이 꿰어진 어둠이 줄기줄기 흘러내리도록 심지를 올려야겠다 그대를 꿴 자리 나도 더 이상 녹갈색의 꽃만은 아니어서 두견새 붉게 운다

 

- 2014년 <시에> 여름호

 

 


 

 

박주용 시인 / 주머니의 힘

 

 

  주머니 만드는 일하는 그녀의 웃음소리 도회지의 아침 여네 새떼들의 빛나는 날갯짓이네 어떻게 알고 있었을까 저 어린 날 여치와 방아깨비의 푸른 날갯짓 주머니 속에 한데 비벼 넣어 웃음 빛깔 토해낼 줄을 가을 들녘 콩깍지 터지듯 웃음보 터트릴 줄을 어떻게 알고 있었을까 아스팔트 기어가는 초록 애벌레의 투명한 속살 쳐다보며 벌거벗은 웃음 웃을 줄을 공장 지붕으로 이륙하는 비행기 엔진소리 같은 재봉틀 돌리며 꿈처럼 훨훨 웃음 날릴 줄을 어떻게 알고 있었을까 아동복 만드는 공 장에서 재봉 일하는 열아홉 그녀가 주머니 달 때마다 반 지하 유리창으로 비집고 들어오는 햇빛을 단칸방에 간간히 들려오는 풀벌레소리를 주머니 속 가득 집어넣어 삶 박음질하며 웃을 줄을 주머니 만드는 일하는 그녀의 웃음소리 도회지의 하루 마감하네 새떼들의 차분한 귀향이네.

 

 


 

 

박주용 시인 / 점자, 그녀가 환하다

 

 

봐라, 점자 그녀가 환하게 피어나고 있잖니

흑점이 툭툭 부호 교란하며 농간 부릴 때만 해도

점자, 저렇게 환하게 피어날 줄 몰랐잖니

열다섯 달덩이 점자, 이울고 환해지기까지

볼우물 깊숙이 수많은 월계수 심어 가꾸는 수고 왜 없었겠니

디딜방아 같은 우묵한 어둠들 통째로 찧어 손끝에 날염도 하고

부르튼 입술에 흐드러지게 꽃씨도 뿌려보며

살아도 그믐이었을 어둠 몰아내기까지

캄캄한 세상과 왜 창창히 마주하지 않았겠니

점자, 그녀 지문에 노란 달맞이꽃 묻어나기까지

새들이 찍어대는 모호함의 발자국에 주파수도 맞춰 보며

두려움과 설렘의 안테나 잘게 썰어 마중 나가던 수고 왜 없었겠니

이제는 그믐도 보름이고 보름도 보름인 점자

문워크로 환하게 꽃길 걷고 있잖니

봐라, 점자 머리핀에도 둥글게 꽃은 피어나고 있잖니

 

 


 

박주용 시인

충북 옥천에서 출생. 충남대와 건양대 대학원 졸업. 2014 《매일신문》 신춘문예 당선으로 등단. 시집으로 『점자, 그녀가 환하다』(시산맥, 2016)가 있음. 현재 화요문학 동인, 시산맥 특별회원, 건양대학교병설건양고등학교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