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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박경림 시인 / 눈꽃

by 파스칼바이런 2021. 10. 24.

박경림 시인 / 눈꽃

 

 

외양간 황소가 안채보다 더 커 보이는

그 옛집에 가고 싶다

 

묵은 먼지 함뿍 뒤집어 쓴 나무마차가 황소를 불러내

겨울을 끌고 가고

황소는 까만 소똥이 두툼두툼하게 말라붙은

꼬리를 휘젓고

눈 오는 날 그의 불룩한 배를 툭 - 툭 치면

가루눈이 날려 눈이 부시던

 

나는 그 길 끝에 황소를 부려놓고 도시로 나왔다

잡풀 한 포기 발붙일 곳이 없던 매끈한 길들 건물들

허기 들린 짐승처럼 아무에게나 속을

열어주던 자동문

복제인형 같은 사람들 틈에서

 

나는 몸이 늘 시렸다

덧신을 신어도 발이 시렸다

툭하면 혓바닥에 백태를 입은 물꽃이 돋아났다

따끔거렸다

황소등처럼 넓게 퍼져나갔다.

 

 


 

박경림 시인

경기도 장호원에서 출생. 1995년 《한국시》를 통해 등단. 저서로는 시집으로 『3년 후에도 그리워진다면』(명문당, 2000)과 『푸카키 호수의 침묵』(지혜, 2012), 산문집 『아름다운 오해와 슬픈이해』(명문당, 2000)가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