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림 시인 / 눈꽃
외양간 황소가 안채보다 더 커 보이는 그 옛집에 가고 싶다
묵은 먼지 함뿍 뒤집어 쓴 나무마차가 황소를 불러내 겨울을 끌고 가고 황소는 까만 소똥이 두툼두툼하게 말라붙은 꼬리를 휘젓고 눈 오는 날 그의 불룩한 배를 툭 - 툭 치면 가루눈이 날려 눈이 부시던
나는 그 길 끝에 황소를 부려놓고 도시로 나왔다 잡풀 한 포기 발붙일 곳이 없던 매끈한 길들 건물들 허기 들린 짐승처럼 아무에게나 속을 열어주던 자동문 복제인형 같은 사람들 틈에서
나는 몸이 늘 시렸다 덧신을 신어도 발이 시렸다 툭하면 혓바닥에 백태를 입은 물꽃이 돋아났다 따끔거렸다 황소등처럼 넓게 퍼져나갔다.
|
'◇ 시인과 시(현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김신혜 시인 / 최선의 감옥 외 4편 (0) | 2021.10.24 |
---|---|
이건청 시인 / 갈대숲에서 외 3편 (0) | 2021.10.24 |
김혜천 시인 / 벗어나기 외 5편 (0) | 2021.10.24 |
이리영 시인 / 검은 원피스 외 5편 (0) | 2021.10.24 |
박남희 시인 / 일몰의 배후 외 2편 (0) | 2021.10.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