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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정연복 시인 / 감사 외 9편

by 파스칼바이런 2021. 10. 24.

정연복 시인 / 감사

 

 

지금까지 멀리에서 나를 찾아온

햇빛과 달빛과 별빛 그 얼마

 

무너지는 나의 등 따뜻이 토닥여준

고마운 손길 그 얼마

 

흔들리는 내 가슴 가만히 안아준

엄마 같은 품 그 얼마

 

내 삶에 희망을 가져다 준

초록 이파리와 푸른 하늘 그 얼마

 

그때는 아팠지만 이제 뒤돌아보니

오히려 감사하게 되는 날들 그 얼마

 

나를 좀더 튼튼하고 깊이 자라게 해준

고통과 시련의 시간들 그 얼마.

 

아직은 나 인생이 서투르고

사랑의 참 기쁨과 슬픔도 잘 모르지만

그래도 살아온 날 손꼽으며

가슴속 문득 와 닿는 한 깨달음 있네.

 

지금껏 내 인생 굽이굽이

은총의 그늘 아래 있었다는 것

 

가지각색 수많은 천사들이

말없이 나를 보듬고 지켜주었다는 것.

 

 


 

 

정연복 시인 / 산

 

 

깊숙이 가라앉은 계곡

높이 솟은 봉우리로

 

하늘과 땅 사이를

슬며시 잇는다.

 

큰 덩치만큼이나

마음도 끝없이 넓어서

 

너른 품속에 말없이

갖가지 생명을 기른다.

 

철 따라 다른

색깔의 옷을 갈아입지만

 

겨우 서너 벌의 옷뿐

사치와는 영 거리가 멀다.

 

가만히 바라보면

풍겨오는 그윽한 느낌은

 

수만 년 수천 만 년

다듬어온 네 영혼의 빛이리.

 

 


 

 

정연복 시인 / 작은 풀꽃의 노래

 

 

나는 작아요

좁쌀같이 작아요

 

그래도 그런데도

삶이 늘 기쁘고 행복해요.

 

실바람 한줄기에도

온몸 흥겨이 춤추고요

 

햇살 한 조각만 내려앉아도

이 몸은 빛나는 보석 되어요.

 

간밤에 내린

방울방울 찬이슬도

 

나의 영혼을 맑히는

하늘의 선물이라고 생각해요.

 

 


 

 

정연복 시인 / 어머니

 

 

긴 겨울의 끝머리

나무마다 꽃눈 움트는 때

 

지상에서의 고단했던 생

가만히 접으시고

 

생명의 본향인 흙으로

돌아가신 어머니.

 

이제 어머니의 몸은

우리 곁을 떠나셨어도

 

한평생 자식 위해 베풀어주신

그 사랑은 또렷이 남아

 

우리도 남은 생

어머니처럼 아름답게 살다가

 

천국에서 다시는 이별 없을

기쁨의 재회를 하는 그 날까지

 

사랑의 수호신 되어

우리를 굽어살피소서.

 

꽃같이 맑고 선하셨던

어머니의 모습을 기억하며

 

우리도 그리 살아갈 수 있도록

늘 힘이 되어 주소서.

 

따스한 인정(人情)의 햇살

조용한 온유함의 달빛이셨던

 

그리운 어머니.

 

 


 

 

정연복 시인 / 꽃 앞에서

 

 

꽃 앞에

가만히 서 있으면

 

나도 문득

한 송이 꽃이 된다.

 

그늘졌던 마음

한순간 스러지고

 

가슴속이

꽃빛으로 환하다.

 

너도 나도

한 송이 꽃과 같은 것

 

사람의 영혼은

본디 꽃같이 아름다운 것.

 

 


 

 

정연복 시인 / 꽃 친구

 

 

내가 기쁠 때

날 더 기쁘게 한다

 

내가 슬플 때

따뜻이 위로해준다.

 

입 한 번

뻥끗하지 않고

 

그냥 가만히

내 곁에 있음으로.

 

이렇게 아름답고 깊은

우정의 꽃같이

 

나도 세상 어느 누구에게

좋은 친구이고 싶다.

 

 


 

 

정연복 시인 / 꽃 사랑

 

 

입이 없어

말은 못하지만

 

꽃은 자신이 서 있는

땅을 사랑한다.

 

발이 없어 이리저리

옮겨 다닐 수는 없지만

 

한평생 한자리에서

세상을 사랑한다.

 

힘이 세지 못해서

큰 사랑을 할 수는 없어도

 

늘 환한 웃음으로

이 세상 사람들을 사랑한다.

 

 


 

 

정연복 시인 / 꽃 가슴

 

 

꽃은

덩치는 작지만

 

보이지 않는 가슴은

크고 담대하다.

 

남이 자기를 외면해도

섭섭해 하지 않고

 

찬이슬 비바람도

기꺼이 받아들인다.

 

늘 웃는 얼굴도 예쁘지만

가슴 또한 넓고 깊은

 

꽃이여

아름다운 꽃이여.

 

 


 

 

정연복 시인 / 채송화에게

 

 

세상 아무것도 모르던

코흘리개 시절에도

 

그냥 내 눈에

참 예뻐 보였던 너.

 

세월은 쏜살같아

어느새 회갑을 지나고서도

 

네 모습은 여전히

어여쁘기 짝이 없구나.

 

알록달록한 빛깔의

앉은뱅이 꽃

 

네 얕은 몸에서 이제 난

네 깊은 영혼을 본다.

 

 


 

 

정연복 시인 / 꽃은 왜 예쁜가

 

 

찬이슬 내리면

찬이슬 맞고

 

소낙비 내리면

소낙비 맞는다.

 

불평

한마디 없이

 

온몸으로

가만히.

 

꽃은 그냥

예쁜 게 아니다

 

삶의 고통과 시련

다 겪어서 예뻐진 거다.

 

 


 

정연복(鄭然福) 시인

1957년 서울 출생. 연세대학교 영문과와 감리교신학대학 대학원 졸업. 번역가이며 시인. 자연 친화적이고 낭만적인 색채의 시를 즐겨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