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연복 시인 / 감사
지금까지 멀리에서 나를 찾아온 햇빛과 달빛과 별빛 그 얼마
무너지는 나의 등 따뜻이 토닥여준 고마운 손길 그 얼마
흔들리는 내 가슴 가만히 안아준 엄마 같은 품 그 얼마
내 삶에 희망을 가져다 준 초록 이파리와 푸른 하늘 그 얼마
그때는 아팠지만 이제 뒤돌아보니 오히려 감사하게 되는 날들 그 얼마
나를 좀더 튼튼하고 깊이 자라게 해준 고통과 시련의 시간들 그 얼마.
아직은 나 인생이 서투르고 사랑의 참 기쁨과 슬픔도 잘 모르지만 그래도 살아온 날 손꼽으며 가슴속 문득 와 닿는 한 깨달음 있네.
지금껏 내 인생 굽이굽이 은총의 그늘 아래 있었다는 것
가지각색 수많은 천사들이 말없이 나를 보듬고 지켜주었다는 것.
정연복 시인 / 산
깊숙이 가라앉은 계곡 높이 솟은 봉우리로
하늘과 땅 사이를 슬며시 잇는다.
큰 덩치만큼이나 마음도 끝없이 넓어서
너른 품속에 말없이 갖가지 생명을 기른다.
철 따라 다른 색깔의 옷을 갈아입지만
겨우 서너 벌의 옷뿐 사치와는 영 거리가 멀다.
가만히 바라보면 풍겨오는 그윽한 느낌은
수만 년 수천 만 년 다듬어온 네 영혼의 빛이리.
정연복 시인 / 작은 풀꽃의 노래
나는 작아요 좁쌀같이 작아요
그래도 그런데도 삶이 늘 기쁘고 행복해요.
실바람 한줄기에도 온몸 흥겨이 춤추고요
햇살 한 조각만 내려앉아도 이 몸은 빛나는 보석 되어요.
간밤에 내린 방울방울 찬이슬도
나의 영혼을 맑히는 하늘의 선물이라고 생각해요.
정연복 시인 / 어머니
긴 겨울의 끝머리 나무마다 꽃눈 움트는 때
지상에서의 고단했던 생 가만히 접으시고
생명의 본향인 흙으로 돌아가신 어머니.
이제 어머니의 몸은 우리 곁을 떠나셨어도
한평생 자식 위해 베풀어주신 그 사랑은 또렷이 남아
우리도 남은 생 어머니처럼 아름답게 살다가
천국에서 다시는 이별 없을 기쁨의 재회를 하는 그 날까지
사랑의 수호신 되어 우리를 굽어살피소서.
꽃같이 맑고 선하셨던 어머니의 모습을 기억하며
우리도 그리 살아갈 수 있도록 늘 힘이 되어 주소서.
따스한 인정(人情)의 햇살 조용한 온유함의 달빛이셨던
그리운 어머니.
정연복 시인 / 꽃 앞에서
꽃 앞에 가만히 서 있으면
나도 문득 한 송이 꽃이 된다.
그늘졌던 마음 한순간 스러지고
가슴속이 꽃빛으로 환하다.
너도 나도 한 송이 꽃과 같은 것
사람의 영혼은 본디 꽃같이 아름다운 것.
정연복 시인 / 꽃 친구
내가 기쁠 때 날 더 기쁘게 한다
내가 슬플 때 따뜻이 위로해준다.
입 한 번 뻥끗하지 않고
그냥 가만히 내 곁에 있음으로.
이렇게 아름답고 깊은 우정의 꽃같이
나도 세상 어느 누구에게 좋은 친구이고 싶다.
정연복 시인 / 꽃 사랑
입이 없어 말은 못하지만
꽃은 자신이 서 있는 땅을 사랑한다.
발이 없어 이리저리 옮겨 다닐 수는 없지만
한평생 한자리에서 세상을 사랑한다.
힘이 세지 못해서 큰 사랑을 할 수는 없어도
늘 환한 웃음으로 이 세상 사람들을 사랑한다.
정연복 시인 / 꽃 가슴
꽃은 덩치는 작지만
보이지 않는 가슴은 크고 담대하다.
남이 자기를 외면해도 섭섭해 하지 않고
찬이슬 비바람도 기꺼이 받아들인다.
늘 웃는 얼굴도 예쁘지만 가슴 또한 넓고 깊은
꽃이여 아름다운 꽃이여.
정연복 시인 / 채송화에게
세상 아무것도 모르던 코흘리개 시절에도
그냥 내 눈에 참 예뻐 보였던 너.
세월은 쏜살같아 어느새 회갑을 지나고서도
네 모습은 여전히 어여쁘기 짝이 없구나.
알록달록한 빛깔의 앉은뱅이 꽃
네 얕은 몸에서 이제 난 네 깊은 영혼을 본다.
정연복 시인 / 꽃은 왜 예쁜가
찬이슬 내리면 찬이슬 맞고
소낙비 내리면 소낙비 맞는다.
불평 한마디 없이
온몸으로 가만히.
꽃은 그냥 예쁜 게 아니다
삶의 고통과 시련 다 겪어서 예뻐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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