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소영 시인 / 뻐꾸기 둥지위로 날아간 새*
나의 ‘부롬든’*은 어디에 있을까
오늘도 눈을 껌뻑이며 하루를 산다 식물인간이 된 나는 그저 누워 있을 뿐이다
곧 둥지 위로 날아갈 새처럼 결박당한 채 그새 날기를 잊고 있다 다만 격하게 몸을 비틀며 반항하고 분노할 뿐 그러다 둥지 속에서 눈을 감는다
꿈이었을까 생시였을까 탁 트인 초원, 난 말 등 위에 올라타 있다 고삐를 채치며 한 몸처럼 자유롭게 치달린다 마을도 높은 산도, 그리고 좌절된 싯귀도 휙휙 스쳐갈 뿐 그 누구도 나를 얽어매지 못한다
어리석은 그대여 나의 ‘부롬든’ ⃰은 늘 내 곁에 있었다
⃰뻐꾸기 둥지위로 날아간 새 : 켄 키지(Ken Kesey)가 발표한 소설 제목 ⃰부롬든 : 『뻐꾸기 둥지위로 날아간 새』에서 맥머피를 질식시켜 죽음에 이르게 한 인물
송소영 시인 / 청설모도 껌을 먹는다
저만치 길에 떨어진 아세로라향 껌 한 덩어리 웬 떡이냐 힘껏 달려가 누가 빼앗을까 덜컥 물었다 입 주변에 반쯤 붙어버린 그 놈은 아무리 뱉고 떼려고 해도 수염과 주둥이에 달라붙어 대롱거릴 뿐 향내도 어느 덧 머리 아프고 단물도 빠져 다른 먹이조차 제대로 찾아 먹을 수 없다 껌을 떼려고 그는 수염까지 뽑아가며 비명을 질러댔지만 결국 그 장애를 피하며 조금씩 먹는 법을 터득했다 그렇게 삭아 떨어질 날을 기다리며 고통스럽게 시간에 부대끼다 제 몸의 일부가 되었다 이제는 보잘 것 없고 밉상스러운 길에 떨어진 증오 한 조각을 바라보면 그만큼 치열했던 삶이 그리워 눈물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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