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형 시인 / 당신 생각
필경에는 하고 넘어가야 하는 얘기가 있다 무거운 안개구름이 밀려들어 귀밑머리에 젖어도 한번은 꼭 해야만 되는 얘기가 있다 잠든 나귀 곁에 앉아서 나귀의 귀를 닮은 나뭇잎으로 밤바람을 깨워서라도 그래서라도 꼭은 하고 싶은 그런 얘기가 있다
- 시집 <코끼리 주파수>(창비, 2011)
김태형 시인 / 외로운 식당
초행이라 길 찾기 바쁜데도 길가 음식점 간판에 눈길이 머뭅니다 뭐 좀 새로운 게 없을까 싶어 찾아든 식당 빈자리 하나 잡기도 쉽지 않군요 그 틈새에 겨우 끼어 돌솥밥 한상 기다리며 앉아 있는데 큰소리로 떠들어대는 손님들 뒤쪽으로 기러기탕 백숙 육회 이 집 특별식 메뉴가 큼지막하게 걸려 있습니다 식용으로 사육하는 것이겠지만 그래도 그렇지 기러기라니 멀건 하늘처럼 끓고 있는 탕 속에서 보글보글 날고 있는 기러기들 먼 길 떠나는 날갯짓 소리는 사람들 시종 떠들어내는 온갖 소리에 묻혀 들리지 않습니다 저 늙어가는 사람들이 차라리 어디 가서 조용히 불륜이라도 저질렀으면 하고 측은해집니다 안쓰럽기까지 합니다 기러기 한 마리씩 뜯어먹는 대신 뭔가 그리워하는 얼굴로 안타까워하는 모습들로 앉아 있으면 안되나 아까 올려다본 흐린 하늘의 기러기떼가 아니었으면 내가 외로운 사람이었다는 것을 잊을 뻔했습니다
- 시집 <코끼리 주파수>(창비,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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