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경애 시인 / 모닥불
한때 푸른 산처럼 솟아
뜨거운 불꽃으로 새를 키우던 어느 날
서로 부둥켜안고 말없이 활활 속삭이던 그대와 나
이윽고 모닥불은 사위고 모두 제자리로 돌아간 아침
더는 타지 않는 화석으로 남은 불꽃 두 송이
발다로의 연인*
*발다로의 연인: 2007년 이탈리아 발다로에서 발견된 한 쌍의 인골. 5~6천 년 전인 신석기시대 인물로 추정되는데 얼굴을 마주하고 서로 끌어안은 자세 그대로 육탈된 모습을 하고 있다. ‘5천년의 포옹’이라고도 불린다.
권경애 시인 / 천도재(薦度齋)
아버지를 멀리 배웅하고 돌아온 날 밤 그는 모처럼 깊은 잠에 빠졌다
이승에서의 미련과 집착을 떨쳐버리고 망자의 영혼이 극락에 이르기를 비는 목탁소리가 소나기로 쏟아지는 법당
두 손 모으고 머리를 조아리며 끝없이 절을 하는 그의 몸이 흠뻑 젖었다
땀에 젖은 옷을 갈아입고 두둥실 떠나시는 아버지 그의 묵은 한을 데리고 가신다.
-시인정신 2014년 여름호
|
'◇ 시인과 시(현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기혁 시인 / 몽타주 외 2편 (0) | 2021.10.27 |
---|---|
김상미 시인 / 자작나무 타는 소년 (0) | 2021.10.27 |
고경자 시인 / 사과, 떨어지다 외 1편 (0) | 2021.10.26 |
강봉덕 시인 / 뒷면의 도마 외 5편 (0) | 2021.10.26 |
박형준 시인 / 달빛이 참 좋은 여름밤에 외 1편 (0) | 2021.10.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