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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권경애 시인 / 모닥불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1. 10. 26.

권경애 시인 / 모닥불

 

 

한때 푸른 산처럼 솟아

 

뜨거운 불꽃으로

새를 키우던 어느 날

 

서로 부둥켜안고 말없이

활활 속삭이던 그대와 나

 

이윽고 모닥불은 사위고

모두 제자리로 돌아간 아침

 

더는 타지 않는 화석으로 남은

불꽃 두 송이

 

발다로의 연인*

 

*발다로의 연인: 2007년 이탈리아 발다로에서 발견된 한 쌍의 인골. 5~6천 년 전인 신석기시대 인물로 추정되는데 얼굴을 마주하고 서로 끌어안은 자세 그대로 육탈된 모습을 하고 있다. ‘5천년의 포옹’이라고도 불린다.

 

 


 

 

권경애 시인 / 천도재(薦度齋)

 

 

아버지를 멀리

배웅하고 돌아온 날 밤

그는 모처럼 깊은 잠에 빠졌다

 

이승에서의 미련과 집착을 떨쳐버리고

망자의 영혼이 극락에 이르기를 비는

목탁소리가 소나기로 쏟아지는 법당

 

두 손 모으고 머리를 조아리며

끝없이 절을 하는 그의 몸이

흠뻑 젖었다

 

땀에 젖은 옷을 갈아입고

두둥실 떠나시는 아버지

그의 묵은 한을 데리고 가신다.

 

-시인정신 2014년 여름호

 

 


 

권경애 시인

2000년  《심상》으로 등단. 시집으로 『누군가 나를』, 『러브 버그』가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