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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서형국 시인 / 약속 퍼즐 외 2편

by 파스칼바이런 2021. 10. 27.

서형국 시인 / 약속 퍼즐

 

 

복잡한 생각을 정리하다

에라 모르겠다 뒤엎고 나니

텅 빈 마음이 골방에 걸어둔 쪽창 같아

밤을 끼워 넣습니다

 

생각을 주입하니 서서히 부푸는 달

그 밝은 스위치를 꾹 누르니

조각난 다짐들도 하나둘 깜박이며

난장을 지릅니다

 

여기요 여기 좀 봐주세요

 

문득

나는 지켜진 약속만큼 완성된 사람은 아닐까

생각해 보니

평균치보다 모자란 키가 0.1도 안 되는 시력을 데려와

슬그머니 어깨동무를 합니다

 

작심할 때 빠져버린 어금니가

소파 틈이나 장롱 밑을 전전하는 동안

꼭 이 자리란 믿음은

한 그루 소나무처럼 굵직하게 맞춰져 있습니다

 

브이 하는 사진에서 구석자리를 지켜낸 새끼손가락은

어제에 빚이 많아 오늘 뒤로 숨었는데

가만 떠올려 보니

기약 없는 밥 한 번으로

하고많은 인연을 뒤집어 끼웠습니다

 

온데 흩어진 자신을 그러모으려

타인에게 묻어간 귀퉁이를 수소문하려는데

미안했던 마음도 홍조 띤 고백이 기특했는지

불끈 쥔 주먹이 천천히 엄지를

밀어 올리는 한밤입니다

 

 


 

 

서형국 시인 / hello

 

 

이 마을에 닿아 나는 국가가 되었다

코끼리 무덤에서 거대한 상아를 훔친 자들이 세운 나라

 

세상은 이 나라 국민들을 도망자라고 수배했지만 전생과 후생이 공존하는 나라에선 아무도 서로를 밀고하지 않았다

 

오래된 여관의 명찰처럼 간신히 매달린 내 마지막 이름자로 자신만 인출할 수 있는 슬픔을 이체시키는 사람들

 

빙점의 나라에서 보일러 수리공이었던 박씨가 끓는점을 연구하다 누대의 생을 통째 불사른 이야기

섬에서 벌침을 놓던 이씨가 혈자리를 찾다 죽은 자의 피가 고인 대문에 대나무를 꽂은 이야기

도시서 항구를 노래하던 정씨가 박자 놓친 손님의 탬버린을 사랑하여 평생을 수절하는 이야기

 

벼락을 맞고서야 거머쥔 행운을 누릴 새도 없이 천 개의 인장으로 빼앗긴 대추나무의 사연 같았다

 

제 몸을 다 태운 그림자처럼 까맣게 웃는 사람들

세상 모든 어금니의 무덤으로 망명을 요청하는 사람들

 

그들이 소문낸 나라

 

국경이

무너지고 있다

 

 


 

 

서형국 시인 / 무궁화는 피었구요

 

 

  웃어도 걸린 거고, 떨어도 걸린 거니까

  안 보면 숨 쉬는 것보다 안전하다고

 

  함성이 퍼지면 무궁화는 술래

 

  잠깐 수화기를 내려놓으려고 엄마가 들를 건데요

  아이들은 아무것도 안 해서 벌을 서고요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끼이익,

  웃어도 걸린 거고, 떨어도 걸린 건데

  미미는 귀가 예뻐 어제보다 목을 더 돌려 술래

 

  정말 몰라서 묻는 건데요

  한 발로 서 있는 게 뒤통수보다 재미있을까요

 

  만일에,

 

  아프지 않은데 아플 거 같으면

  아파야 하는데

  가려워서

  술래

 

  이제 안 하려고요

  오월, 이 놀이

 

  멈추고 싶은데

  펑 펑 자꾸만 들켜버리는 소리

 

  노래는 들키려고 진짜

  먹지도 못하는 매운 축제는 가짜

  콩닥콩닥 소리는 진짜

  깜짝깜짝 재미는 가짜

 

  탕 쏴야 하는데 라이터로 맥주병을 따는 아저씨

  너무 멋있거든요

 

  머리 딴 총구에 흔들흔들 노래가

  딱 걸렸는데,

 

  엄 마가 술래라고

  내가,

 

  멎을 차례라고

 

웹진 『시인광장』 2019년 5월호 발표

 

 


 

서형국 시인

1973년 창원에서 출생. 2018년 월간《모던포엠》 최우수 신인상으로 등단. 현재 월간 『모던포엠』 사무국장. 全人文學 회원. 시나무 동인. 문학동인 volume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