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주일 시인 / 나는 누군가의 지주(地主)이다 ㅡ늙은 삼각형의 공식
땀내 한 다랑이 경작하는 농사꾼과 악수할 때 손바닥으로 전해 오는 악력(握力)은 삼각형의 높이이다 얼굴이 경작하는 주름의 꼭짓점마다 땀방울이 열려 있다 땀이 늙은이 걸음처럼 느릿느릿 흘러내리는 건 얼굴에서 발까지 선분을 그어 품의 높이를 구하기 때문 소금기를 남기며 닳는 땀방울 자국을 사람의 약력(略歷)으로 출토해도 되나? 겨우내 무너진 밭두렁을 족장(足掌) 수로 재며 뙈기밭의 넓이를 구하던 이 허리 굽은 사내는 나의 첫 삼각형 등 굽혀 만든 앞품을 내 등에 밀착하고 새끼가 품의 넓이란 것 스스로 풀이하게 한 삼각형 공식 어린 손등에 손바닥을 밀착하여 까칠까칠한 수많은 꼭짓점을 별자리로 생각하게 한 엄지와 검지를 밑변과 빗변처럼 괴게 하여 절대 쓰러지지 않는 높이로 연필 거머쥐게 하고 내 이름자를 새 별자리 그리듯 처음 쓰게 한 피라미드처럼 몰락해버린 한 사내의 악력은, 왜 지금껏 사내의 품을 땀내로 환산하게 하는가 늙은 삼각형이 악수한 손을 놓지 않고 흔들어댄다 내 팔꿈치가 농사꾼의 허리 각도를 이해할 때 내 몸 통각점들이 지워진 선분을 다시 긋는다 내 이름자 획순으로 흐트러진 사내의 골격이 내 몸속에서 읽힐 때 연필심에 묻혔던 침만큼의 땀이 손바닥에 어린다 내 눈은 왜 땀에 젖은 손바닥을 꼭짓점으로 이해하는가 젖은 눈은 왜 나를 타인 되게 하는가 내가 누군가의 눈으로 그의 얼굴과 손과 발 세 변의 길이를 잰다 내가 누군가의 눈을 껌벅이며 곤혹스러워할 때 삼각형의 높이를 잴 눈물이 제자리에서 마른다 내가 이 점(點)에 염기를 경작하여 누군가의 발까지 이르는 높이 하나 짠내 나게 그으면 나는 누군가의 지주(地主)가 된다
<제5회 시산맥작품상 수상작>
차주일 시인 / 독창 속의 합창 ㅡ검붉다
얼굴을 무표정에게 양보한다. 텅 빈 양면 악보가 펼쳐진다. 체온이 유인원 이전의 음색을 다녀온다. 차갑게 바뀌는 감정은 옛말이 된다. 짙어졌다는 말과 어두워졌다는 말이 같아지는 저물녘 검정으로 투항하는 색깔들이 거친 노래를 주관하고 있다. 방향이 거꾸로 인 단 하나 빨강은 따듯하다고 해석되는 음정을 이탈하고 있다. 회귀어의 등지느러미가 얼음물에 씻겨 나가듯 호흡이 줄면 평지로 돌아오는 산등성이처럼 여백을 구별 않는 소리들이 묵화처럼 옅어진다. 낮아진다는 말과 멀어진다는 말이 같아진다. 흑백이 원색으로 발음되는 세계에서 빨강이 간주만큼 따듯해진다. 얼굴과 표정이 1, 2절을 혼동해 부르며 같은 체온으로 겹친다. 붉음을 노래할 때만 제 모습을 내보이는 새벽 감정이 노랫말의 필자와 화자를 착각한다. “의”로 적은 노랫말이 “에”로 발음되어도 검정이 섞이는 빨강은 여전히 붉다고 해석된다. 어떤 체온에 도착하면 1인칭이 2인칭으로 바뀌는가. 나는 우리로 연주되는 악보가 되는가. 양면 악보를 펼쳐 놓았던 자리가 한 면으로 남아 있다.
차주일 시인 / 어디를 완공하다 ㅡ옥탑방의 구조
누가 어둠에 건축한 두개골 썩지 않도록 지켜낸 구멍으로 어디를 응시하고 있다. 어디를, 가리킬 때 펴는; 검지 손톱만큼 빛나는 창틀 부릅뜬 눈자위처럼 커져 있다. 저 시야에 든 피사체 모두 끌려 들어가 어디에, 건축 자재로 쌓여 있겠다. 젖꼭지 대신 검지를 빨며 울음 멈춘 아기 입술을 지켜보노라면 이전까지 내게 없었던; 어디가, 아파오기 시작하고 나는 어딘지 모를 어디를 찾기 위해 그간 쌓아둔 모든 표정을 밤새 뒤적거린다. 불면이 습관인 달동네는 개미굴의 골조를 갖고 있다. 젖떼기 내장 같은 골목들이 물고 있는 큰길 입구로 들어선 마지막 여자가 식량으로 끌고 온 제 그림자 쌓아두는 방을 올려다본다. 어둠에도 입구가 있음을 일러주는 유리창이 깨진 불빛 몇 조각을 언 땅에 이어 붙이고 있다. 나는 한기로 기운 저 누더기 불빛을 소리 나지 않게 열고 일터로 나서는 뒷모습을 지켜본 단 한 사람. 손 가리켜; 먼 곳을 제자리이게 하는 검지나 눈 깜박여; 먼 곳을 조각조각 코앞에 끌어다놓는 시선처럼 분절로 건축된 뒷모습의 척추를 본 단 한 사람. 늑골을 골목 삼아 개간한 뒷모습을 바라볼 때 얼마나 큰 고통이었으면 나는 나도 모르게 어디를 감싸 쥐었던가. 격자창 형식의 양 손바닥으로 제 눈을 가리면 완공되어 있는; 어디 한 채, 도편수가 잣대 삼는 검지로 더듬어 본다. 내 얼굴에 어머니의 등뼈 한 본(本)이 상량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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