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희봉 시인 / 옥향나무꽃
헤지고 망가진 구두를 수선하는 일상 대학 건물 한편 하용진 옹의 하루 생활 올해 70세로 45년 간 눈이오나 비가와도 떨어진 구두 밑창을 갈아주고 있다
이음새마다 바늘로 꿰매 뿌연 먼지 닦아내고 윤기 흐르도록 솔질 약칠하며 구두는 외모의 모습이 화려함이나 정한 가격이 아니라는 말을 들으면서
측은지심이 들다 구두수선으로 성공시킨 자식들의 극구 반대에도 어떻게 보던지 자신보다 더 가난한 사람을 위해서 함께 살고 싶다며 밝은 미소를 짓는다.
밑창과 위 창이 떨어져 물이 새는 내 구두 수선을 마친 후 새 구두처럼 걱정 없었지만 좀 닦아 신으라는 권유에 덩달아 나도 웃음꽃이 피었다
구두수선소 옆 옥향나무에 가까이 빽빽한 잎 속에 꽃향기 때문일까 작은 갈색 늙은 향나무 짙은 향기가 노인의 미소처럼 물씬 풍겨 왔다
유희봉 시인 / 계란의 반란
시골 오일장에 내다 팔아 가족의 필수품 사오곤 했던 계란, 닭장 안 암탉 소리 울면 할무이 어김없이 꺼내 오라는 닭의 알, 다시 씨암탉이 돼 낳은 닭의 알, 장바구니 속 꼭 하나만 바늘구멍 내 흰 살 약간 양심적으로 빨다 가슴 두근 두근 노른자 출렁 출렁 하니, 조심스럽게 쭉~ 쭈우욱 힘겹게 흡입한 닭의 알.
타원형의 지구 두꺼운 지표를 뚫고 유황불 솟구칠 때? 마다, 그 닭의 알을 생각한다 노른자가 나온 후 극히 빈약한 껍질 속 생명의 혼 공전과 자전을 할 때 계란의 각도를 생각한다 하얀 표면 번지던 유황불의 두려움처럼 노오란 병아리 목 내밀 때마다 심장이 뛰는 지구의 박동음
오! 일 점 일 획 도 가감이 없다는 성경 구절 "다음에는 꼭 불로써 심판이 있으리라" 바다 건너 고베에는 수천의 생명 불의 반란 때문에 큰 난리가 일어났다 아! 오늘밤 마음의 고배(苦杯)라도 들어야 할까 한 줄 한 알의 생명이 자동차처럼 흔들리다 깨져 버린 무정란의 달걀 더미.
내 고향 온천을 파낼 때, 어린 시절 바늘구멍으로 퍼내던 달걀을 생각한다 빗나간 계란의 각도를 느껴 본다 우주선에서도 보인다는 만리장성 민초들의 한숨 속에, 지구의 무게 축이 흔들려 흘러나온 노른자 계란의 반란을 생각한다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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