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재경 시인 / 외도(外島)*
외도를 꿈꾸는 사내 언제나 그날만을 생각하며 분기탱천해있다 이번에는 제대로 즐거움을 만끽하리라 그 부드럽고 쫀득한 살결들을 잊을 수 없다 어둑어둑, 밤의 테러분자 네온들이 활개 하는 저녁 사내는 외도에 젖어, 홀로 주점을 찾는다 다시 완벽한 외도의 대비책을 마련해야 할 터였다 부들부들 떨리는 그 기억을 떠올리며 아내는 깊게깊게 잠이 들었고 살금살금 집을 빠져나와 줄기차게 새벽을 달려 찾아들었던 그 황홀한 출렁임을 넘어 끓임 없이 탐닉했던 겨울 영등철* 격정적 뜨거움을 밤을 허물며 솟구쳐 오는 미명의 바다가 온몸을 휘감는다 두 손이 으스러지도록 부여잡았던 절정의 클라이막스를 되새김질하는 사내, 마구 출렁인다 다시금 그날의 흥분으로 속곳이 다 젖어든다
사내, 주말의 외도를 꿈꾸며 행복하다
*외도: 경남 거제시 해금강에 있는 섬. 낚시꾼들이 자주 찾는 곳이다. *영등철: 음력 2월을 말한다. 낚시꾼들에게는 대물 감성돔을 낚을 수 있는 절호의 시기이다.
배재경 시인 / 아, 어머니
어제는 춘호댁이 놀러 와서는 잔칫집에 어서 가자고 내 손을 잡아끄는디 아, 그게 가도 가도 진흙길이고 발목이 푹푹 빠져 영 죽겠는기라 숨구멍이 목에 차 환장하겠드마 아무리 쉬어가자 해도 그 망할 년이 계속 손만 잡아당기는디 아, 팔이 다 빠지는 줄 알았제 그 이상타 와 멀쩡한 길 놔두고 이 꼬부랑길로 가는지 알 수가 있어야제 니, 춘호댁 알제? 와 방앗간 하던 집 안 있나, 둘째아가 징역 갔다 오고 했잖아? 춘호댁 모르겠나? 벌씨로 죽은 지 오래됐다 그가 나보다 세 살 작아 내하고는 성 동상하고 지냈제 그래, 그러다 내가 하도 심장이 상해 이년아 좀 놔봐라 하고는 손을 확 뿔치고 도로 우로 올라왔다 아이가 도로 우로 오까네 바로 신작로 우리집 아이가, 하도 반가버 삽짝 문을 밀치고 들어와서는 물부터 벌컥벌컥 마셨제 지금 생각해보이 아마 그 할망구 따라 갔스면 이제는 니 못봤을 끼다 내가 아직은 죽을 때가 멀었는기라 니, 밥은 묵었나? 아는 잘 있제?
배재경 시인 / 금산錦山의 별 따기
도시에는 먹음직한 별을 생산하지 못한다 우수한 생산품은 훌륭한 재료와 시설이 갖추어져야만 가능하다 어둠이 척척 짙어가는 아홉시 경 최상급의 별을 생산하고자 예정에 없던 곳으로 방향을 꺾었다 은밀히 은밀히 미끈한 고속도로에 삽입하여 南海錦山으로 펌퍼 질을 한다 비단은 안과 밖이 비단이다 자정의 시각, 별을 생산하기 안성맞춤의 시설들이 준비되었다 울긋불긋 숲들은 운우지정을 끝낸 달콤함으로 고요하다 어둠의 가속도가 붙을수록 별들이 하나 둘 생산되기 시작했다 이제 완성품을 온전하게 따 가져가는 것만 남았다 우선, 번쩍 번쩍이는 별들부터 한 아름 싸 담는다 그러자 사방에서 나도 좀 가져가줘! 가져가줘! 앙탈을 부린다 난 북두칠성이야! 난 카시오페이아야! 난 페르세우스야! 난 오리온이야! 난 은하수란 말이야! 끊임 없이 별을 담고 보니 이마엔 땀이 나고 아니 에오스의 눈물은 아니겠지 허기가 진다 그래 좀 쉬었다 담자 호주머니 이곳저곳에 쑤셔놓은 별들이 갑갑하다는 듯 아우성을 친다 담아도 담아도 별은 금세 재생산, 북두칠성도 카시오페이아도 오리온도 복제품으로 다시 나타났다 큭, 어느새 저 우주도 A.I 전성시대인가보다 A.I시대에 별 따기라니 별들의 경쟁력이 급속히 하락장세로 돌아선다 서둘러 금단의 골짜기를 벗어나야겠다
배재경 시인 / 상어 아가리 속으로
그런 날이 있는 거다
늘씬 늘씬 인어들과 놀고 있는데 뒤뚱뒤뚱 펭권과 놀던 아이가 바닷고기가 지겨워졌는지 칭얼대기 시작한다 마침내 울음보는 성질난 복어처럼 팽팽해지고 더 이상 아이를 격노하게 할 순 없다 지상의 어미가 가해올 채찍이 두렵다 그녀가 입으로 쏘아대는 채찍은 너무 가혹하다 서둘러 지상으로 상승 중
악! 어디서 나타났담! 백상아리 한 마리 무시무시한 이빨을 드러내고는 우리를 반긴다 힘차게 넘실대던 파도가 갑자기 호수처럼 고요하다 착착 접혀 들어가는 에스컬레이터도 낑낑 불안한 울음을 삼키고
저, 저, 저놈이 도대체 언제 이곳에 들이닥친 것인지, 애시당초 바다로 들어온 게 실수였어 상어가 왜 하필 우리 앞에 아가리를 쩌억 벌리고 서 있느냐 말이야
딸아이는 으앙! 으앙! 울음을 터트리고 이거 우애야 되노? 아무리 발버둥쳐도 백상아리 아가리 속으로 빨려드는데, 내가 무얼 할 수 있을까, 아이는 혼비백산이다
이 눔의 시키! 놈의 날카로운 이빨이 부러져라 주먹을 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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